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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이적 표현물 판결난 ‘김일성 회고록', 원전대로 국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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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민족사랑방 김일성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표지.


대법원 판결에서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국내에서 처음 출간돼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국내 대표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21일 현재 예스24에 주문하면 다음날 수령 가능하며 인터넷 교보문고와 알라딘에서는 26일 출고 예정으로 예약판매중이다.

책은 사단법인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을 지낸 김승균(83)씨가 지난해 11월 출판사로 등록한 민족사랑방에서 지난 1일 8권짜리 양장본으로 출간됐다. 정가는 8권 세트 28만원. 김씨는 북한 관련 무역 등을 하는 중소기업인 남북교역 주식회사 대표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를 담았다는 ‘세기와 더불어’는 1992년 4월 15일 김일성 80회 생일을 계기로 1992년 4월부터 1997년 8월까지 평양 ‘조선노동당 출판사’에서 대외선전용으로 발간됐다.

출판사측은 인터넷 서점 책 소개란에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중국 만주벌판과 백두산 밀영을 드나들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생생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1920년대 말엽부터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20여 년간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싸워온 투쟁기록을 고스란히 녹여 낸 진솔한 내용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면서 “사실 일제 치하에선 김 장군을 전설적 인간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이제 본인의 회고록으로 의문의 여지는 풀렸다 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이제 냉전이 허물어지는 세계사는 또다시 중국 미국을 맹주로 하는 2차 냉전이 목하 시작되었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또다시 제2차 한국전쟁의 전쟁터로 변모하여 우리 민족이 괴멸할지도 모른다. 이제 남북 간 화해를 통하여 통일프로세스를 성공시키자”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제주4.3의거, 여수 순천 의거가 명예 회복되어 원혼을 달래고 있다. 좌익세력의 항일무장투쟁도 항일투쟁의 혁혁한 공적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고 하기도 했다. 출판사는 또 “이 책의 출판이 민족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남북화해의 계기가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판매 수익금은 통일운동기금에 사용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책의 출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는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1년에 대법원은 평소 북한 체제를 추종하다 이를 배우겠다며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정씨가 소지한 ‘세기와 더불어’ 등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6년에는 학생들에게 ‘김일성 회고록’ 감상문 제출을 요구한 울산대 교수 이모씨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일성이 숨진 직후인 1994년 8월에는 도서출판 가서원이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서 출판하려 했다가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출판사 대표가 구속당하기도 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 간행물 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체제전복 활동을 고무 또는 선동하여 국가의 안전이나 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으로 “보편타당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민족사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에 해당하면 유해 간행물로 판단한다. 심의 결과 유해 간행물로 결정된 책은 수거, 폐기된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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