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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한 없이 이어진 엑셀 화면. 기업의 회계 장부 같지만, 미국 뉴욕 미술계의 큰손 스테판 에들러가 소장한 예술 작품의 목록이다. 그의 집은 제프 쿤스, 조지 콘도 등 수십억을 호가하는 현대 미술가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에들러는 작품 거래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부동산과 다를 게 없어요". HBO 다큐멘터리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The price of everything, 2018)다.
다큐멘터리는 뉴욕 예술계와 소더비 경매를 중심으로 수천 달러가 우습게 오가는 미술계 시장을 해부한다. 작품에 따르면 세계 예술 시장 규모는 560억 달러(약 62조43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세계 부호들의 돈이 미술 시장에 몰리는 시기는 경매가 열리는 가을이다. 아트 딜러가 경제 뉴스에 나와 작품 해설 및 시장 전망을 내놓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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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술계 흐름에 올라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가도 있다.' 포스트모던 키치(kitsch)의 왕'으로 불리는 제프 쿤스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벌룬 독'(Balloon Dog), 한국 신세계 백화점과 협업한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 등 굵직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30여 명의 조수를 고용해 마치 공장처럼 작품을 생산해낸다. 그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하지만, 작품에 실제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그런 제프 쿤스를 영화 '더 울프 오브 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에 비유한다. 조던 벨포트는 화려한 언변으로 고객을 설득해 금융 상품을 판매한다. 제프 쿤스 역시 남다른 언변과 처세로 미술 시장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예술가처럼 혼을 담아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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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는 이러한 흐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작품이 부유한 컬렉터의 손에 가기보다 미술관에 걸려 시민 모두가 누리길 바란다. 작가 마릴린 민터는 "미술 시장에 대해 알려고 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자기 작품이 경매에서 100만 달러에 팔리는 걸 살아서 보는 '화이트 히트'는 미술가에게 위험해요. 사람을 망치거든요. 그냥 미쳐 버리죠."
다큐멘터리는 미술 시장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빌어 예술의 가치를 잊은 채 변질된 미술 시장을 비판한다. 현재의 미술 시장이 거품이라는 거친 지적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 분석이 제법 정확했는지 성장을 거듭해오던 전 세계 미술 시장 규모는 2018년 67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640억 달러로 감소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여파로 지난해 501억 달러에 머물렀다. 국내 미술 시장 역시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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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온라인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 3대 경매회사(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의 지난해 온라인 경매 실적은 전년 대비 모두 2~3배씩 늘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미술 시장에 MZ세대가 미술계에 대거 유입됐고, 이들 선호에 맞춘 전후-현대 작품이 주로 거래되고 있다. 최근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NFT' 역시 미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물론 NFT의 미래 가치를 둘러싼 갑론을박의 결론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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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의 가치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예술에 가치를 얼마나 매겨야 하냐'는 본질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모든 것의 가격'(The price of everything)이다. 세상 만물 모든 것에 숫자의 잣대를 들이밀고 가격을 매기는 자본주의 원칙에 예술 역시 결코 예외일 수 없다. 미술관은 작품의 무덤이라 말하며 "미술관은 지극히 사회 민주주의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소더비의 아트딜러 에이미 카펠라조를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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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말미, 뉴욕 미술계는 그동안 시장이 요구하던 그림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느라 외면받았던 래리 푼스를 재발굴한다. 저평가 우량주식을 찾듯 지극히 투자적인 관점에서 이뤄진 발견이었지만, 평생을 두터운 물감과 씨름했던 대가의 노력을 알아본 선택이기도 했다. 미술 시장이 래리를 다시 주목하며, 한때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았던 그도 대중 앞에 행복한 모습으로 선다.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평가되는 시대, 세상 만물이 숫자의 잣대와 연결돼 있듯 예술도 결코 경제와 떨어질 수 없다. 결국, 숫자의 잣대가 이롭게 쓰이며, 그 잣대가 지나치게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현명하게 다듬는 게 정답이 아닐까.
[이투데이/안유리 기자(inglas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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