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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슈 물가와 GDP

코로나가 불평등 완화?…‘GDP의 역설’ 개선 목소리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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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도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새로운 지표 필요”

한겨레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3월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코로나19와 불평등’을 주제로 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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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계적 불평등이 악화한 가운데, 경제성장 흐름을 나타내는 중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거세지고 있다. 환경·교육·행복 등 개인의 삶의 수준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누리집을 보면,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코로나19와 세계 불평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지디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디턴 교수는 논문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등의 자료로 국가별 지디피를 따지면, ‘가난한 나라가 열약한 보건 시스템이나 방역체계로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제표상으론)2020년 세계 불평등은 완화됐고, 인구 가중치를 둬 따지면 약간 악화했지만 인도가 지난해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입어 지디피 성장률이 크게 하락한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93개국의 지디피 성장률을 따진 결과, 하위 97개국은 5% 하락했지만 상위 96개국은 10%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인 미국,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반면 탄자니아, 부룬디 등은 사망률이 낮은 영향으로 해석했다.

디턴 교수는 연구 결과의 의미를 지디피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서 찾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빈곤국에서 고통의 정도가 어떤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1인당 지디피는 생활 수준을 보여주지 못하는 지표”라며 마카오 사례를 꼽았다. 인구 67만명인 마카오의 경우, 2019년 1인당 지디피는 12만9천달러로 세계 1위였지만, 코로나19로 여행객이 줄어 지난해 6만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마카오의 지디피 하락은 국가별 단순 평균으로만 따지면, 고소득 국가의 지디피가 크게 줄어 세계 불평등 완화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인구를 고려해 세계 불평등을 따지면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더욱이 마카오 지디피 대부분이 도박장을 소유한 해외 자본 몫이어서 개인의 소득 수준과도 거리가 있다. 마카오 지디피 가운데 가계 소비는 25.4%로, 미국(67.9%)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디턴 교수는 “분배나 환경 파괴 영향이 담겨 있지 않는 등 지디피의 단점은 잘 알려졌지만,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실제 개인 소비(Actual Individual Consumption)’와 같은 지표를 산출해 정책 입안자들이 지디피가 외면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주장은 코로나19 회복을 위해 성장 위주의 지디피를 넘어선 새로운 지표를 제안한 세계경제포럼의 행보와도 연결된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해 10월 ‘코로나 이후 회복을 위한 새로운 경제를 위한 계기판’이라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회복을 위한 가이드에 필요한 ‘경제적 성공’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 회복에 대해 ‘브이(V)자’, ‘엘(L)’자’, ‘케이(K)자’ 형태 전망이 있지만 이는 지디피 성장 관점으로 환경이나 사회적 관점은 없다”고 밝혔다. 또 새로운 지표는 번영(prosperity)·지구(planet)·사람(people)·제도(instituition) 등 네가지 측면에서 고안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유엔개발계획(UNDP)이 국민소득뿐만 아니라 고용, 교육, 건강, 환경 등을 포함한 ‘인간개발지수(HDI)’를 고안하는 등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2008년 프랑스 정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주축으로 한 위원회를 발족해 대안 마련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경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6년 5월 지디피 보완 지표 개발을 약속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당시 이주열 총재는 “지디피가 한 나라의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 물질적 번영의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지만 최근 서비스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면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지디피 추정 방법을 개선하고 생활 수준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새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19년 디지털 경제 일부분을 지디피 측정 지표에 포함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보완 노력이나 새 지표 개발은 없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엔 등과 소통하며 지디피 지표 개선을 준비 중”이라며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코로나19에도 반도체, 화학 등의 실적이 좋아 지디피는 양호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주 가천대 불평등과 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디피가 코로나19로 인한 이른바 ‘케이(K)자 양극화’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우리나라도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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