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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편지⑥] 틴잔 꽃 찬란한데…임시정부-무장단체 연대 더디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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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부통령 사실상 ‘내전’ 선포

여론도 군부에 무력 대응하자는 쪽

소수종족 무장단체들 독립적 활동

단체·세력간 관계 얽혀 연대 미적

군부에 중요한 27일 ‘국군의 날’

임시정부-군부간 첫 분수령될 듯


한겨레

25일 미얀마 북부 카친주 파칸에서 시민들이 ‘카친독립군(KIA)의 개입을 원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보이스 오브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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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양곤의 아침, 동네 어귀마다 노란색 틴잔 꽃이 피었습니다. 다음달에는 미얀마 달력으로 신년을 기리는 ‘틴잔 물 축제’가 시작되는데, 시민들은 일 년 중 이 때를 가장 기다립니다. 이 시기 여성들은 노란 꽃을 머리에 꽂고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올해는 노랗게 물든 틴잔 꽃이 그냥 이대로 시들 것 같습니다. 눈부신 꽃과 달리 미얀마 시민들은 표정을 잃었고, 39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마치 한 겨울 같습니다. 쿠데타 이후 50여일이 지난 현재 군부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만 270명이 넘기 때문입니다.

지난 14, 15일 이틀 동안 양곤의 공장이 몰려있는 흘라잉따야와 쉐비다에서 6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금도 시민들은 군부의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양곤에서는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 동력이 많이 상실됐습니다. 군부는 중장비를 투입해 시위대가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이전 여당이었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일부 의원들이 꾸린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 임시정부는 시민들에게 더 많은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기방어권을 행사하라고 지난 1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주로 별다른 가이드라인 없이 자기방어권을 행사하라고 하면, 시민들의 희생만 늘어날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많습니다. 그러나 17일 임시정부의 부통령이 소수종족 무장단체들과 연대해 군부에 무력으로 맞서겠다고 사실상 내전을 선포하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여론은 슬슬 군부에 무력으로 맞서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한겨레

지난 21일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 거리에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설치한 바리케이드 앞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 만달레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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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한 영토에서 두 개의 정권이 내전 수준의 분쟁을 벌여 더 많은 혼란이 야기되면 유엔(UN)이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보호책임 조처를 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미국의 개입을 원했듯, 이곳 시민들은 유엔이 적극 개입해 무고한 희생을 막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와 소수종족 무장단체의 연대가 발표했던 것 만큼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분포된 소수종족 무장단체가 각각 독립적 활동을 해왔으며 각 소수종족단체간 그리고 군부, 민간정치 세력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여 연대가 이뤄진다고 해도, 이들의 군사력이 군부와 맞설만 한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미얀마의 소수종족 무장단체의 활동은 1948년 미얀마의 독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패권경쟁으로 강제로 국경이 나뉘었고, 분할 통치됐습니다. 미얀마는 독립 뒤 지리적 여건과 상관없이 버마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다종족 국가가 되었는데, 현재 버마족이 60% 이상이고 카렌, 카친, 샨, 친족 등 130여개의 종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무장단체는 이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종족들이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꾸려졌습니다. 소수종족 중 가장 큰 카렌족은 1947년 카렌민족연합당(KNUP)을 만들었고 공산주의 노선을 유지하며 반군 활동을 펼치다 1960년대 카렌민족연합으로 재창설됐습니다. 이후 1990년대 종교적 갈등으로 카렌불교군(DKBA)이 분리돼 친군부 무장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카친족은 1960년대 중국 북부와 인도의 접경 지역에서 카친독립군(KIA)을 조직했고, 샨족은 중국 동북부와 접경 지역에서 1960년대부터 샨주 무장군(SSA)을 결성해 자치권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무장 경찰이 21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위대가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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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민주화항쟁 이후에는 학생들이 타이(태국) 국경으로 피신해 버마학생군(ABSDF) 등을 조직했는데, 이들도 초기엔 카렌민족연합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10개 정도의 무장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초기 저항 대상이 군부였기 때문에 임시정부와 이들과의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부 역시 2010년 초부터 소수종족 무장단체와 휴전을 추진하며 몬민족신당(NMSP), 카렌불교군(DKBA), 카렌민족평화군(KNLA), 라카인인민해방당(ALP) 등과 협정을 맺고 친군부 성격의 무장단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임시정부와 무장단체의 연대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군부의 탄압에 맞서기 위해 임시정부와 무장단체의 연대를 바라지만, 마냥 반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미얀마 군·경은 50만명을 넘지만 소수종족 무장단체는 숫자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최근 발생한 어린아이들의 죽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장 연대의 저항이 길어지면, 시민을 볼모로 한 군부의 폭정도 거세질 것입니다.

27일은 미얀마 국군의 날입니다. 이날은 1945년 아웅산 장군을 선두로 했던 미얀마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기리는 날로 군의 성립에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중요한 날입니다. 현재 군부는 이날을 기점으로 국내 정치의 안정을 기하고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날이 군부와 임시정부, 두 세력 간의 첫번째 분수령이 될 것 같은데, 그 희생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게 될까 걱정입니다. 집 앞 노란색 틴잔 꽃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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