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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한쪽선 ‘무한 진화’, 다른쪽선 여전히 ‘갑질’…AS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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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사는 박모(38)씨는 얼마 전 세탁기 세척 서비스를 신청했다. 최근 LG전자가 가전제품 세척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했다. 세탁기를 산 지 7년이 돼 세탁을 마친 옷에 먼지 덩어리가 묻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박씨는 “신청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5월 말에 엔지니어가 방문 예정”이라며 “제조회사가 직접 분해해 세척·재조립해준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아우디 A6의 차주인 박모(42)씨는룸미러의 플라스틱이 깨져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차를 산 지 2년 밖에 안돼 무상수리를 기대했는데 “차주가 설치한 블랙박스가 원인이어서 서비스 대상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차를 팔 때는 3년(10만㎞) 무상 AS를 강조하더니 막상 수리를 받으려니 엉뚱한 답변을 해 속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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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수리하고 있는 LG전자 엔지니어. [사진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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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치열한 가전은 갈수록 진화



가전업계를 중심으로 AS가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 편의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른바 ‘AS 갑질’ 논란이 여전하다.

LG전자는 최근 ‘가전 세척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회사 엔지니어가 전문 장비를 들고 다니며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을 세척‧살균해준다. 삼성전자는 올 1월부터 가전제품 이전 설치‧세척 등을 제공하는 ‘케어 플러스’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부 서비스는 유료다. 세탁기 세척을 이용하는데 10만 원 선이다. 삼성전자는 3~6월엔 에어컨 사전 점검을 무료로 해준다.

영국계 가전회사 다이슨은 택배로 AS 제품을 수거한다. 서비스센터 방문이 어려운 고객을 위해 2019년 4월 ‘픽업 서비스’를 도입했다. 회사에 연락해 AS를 요청하면 지정한 날짜에 제품을 수거하는 상자를 보내준다. 이때 수리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제품(헤어제품은 제외)을 무료로 제공한다. 회사 관계자는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는 고객으로부터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전자랜드‧롯데하이마트 같은 유통업체도 가전관리 서비스를 내놨다. 하이마트는 새 제품을 살 때 정기관리 서비스를 묶어 ‘가전 케어십’ 패키지를 제공한다.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면 최장 5년까지 AS 기간을 연장한다.



“그래도 또 산다” 명품업체 ‘갑질’ 여전



일부 콧대 높은 기업들의 ‘AS 갑질’은 여전히 논란이다. 애플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애플에 이동통신사에 대한 보증수리 촉진비용 전가를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그간 AS 비용을 국내 이통사에 전가하고, 사실상 AS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AS 방식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고장 난 부품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리퍼 제품(반품했거나 회수 후 수선해서 다시 내놓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방식이라서다. 이런 경우 교환 비용이 만만찮다.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성모(33)씨는 “제품이 휘어져 수리를 맡겼는데 36만원에 리퍼 제품으로 바꾸라고 하더라”며 “그 비용이면 차라리 새 제품을 사고 말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엔 수리를 맡은 엔지니어가 수리비 명세를 묻는 고객에게 “영어 할 줄 알면 영어로 설명해 주겠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소비자 불만 커뮤니티에는 코웨이와 쿠쿠는 AS센터 통화 연결에만 수십 분이 걸린다는 불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두 회사는 정수기·밥솥 시장에서 각각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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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을 수리하고 있는 삼성전자 엔지니어.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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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를 소홀히 해도 새 제품을 팔 수 있다는 ‘자만심’도 깔려 있다. 해외에 본사가 있는 수입 명품의 경우 ‘본사’가 단골 핑곗거리다. 예컨대 프랑스에 본사가 있는 명품 브랜드에 AS를 맡기면 “본사로 보내면 수선에 1년은 걸릴 텐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응대하는 식이다. 최근 백화점에 에르메스 가방을 구매한 지 3개월 만에 손잡이 이음새가 헐거워져 수선을 맡겼던 최모(41)씨는 “판매 직원이 ‘인근 OO 수선점에 가면 일주일이면 된다’고 안내하더라”고 말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AS가 어렵고 비쌀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라며 “AS 개선을 요구하며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식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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