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상승세라면 이 같은 전망이 무리가 아닐 듯싶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Piper Sandler)의 크레이그 존슨(Craig Johnson) 애널리스트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6~12개월 사이 유가가 1000달러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아직 40% 이상 상승 여력이 남았다”고 내다봤다.
지난해만 해도 유가 100달러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발 초기 국제유가는 수직 낙하했다. 4월 말 기준 12달러까지 폭락하며 생산원가가 위협받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원가가 30~40달러, 러시아도 20달러가 넘는 상황이었다. 원가가 2달러 정도 된다고 밝힌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라의 석유 생산업체가 도산에 빠질 위기였다. 이 같은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고 유가는 결국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투자자가 몰리며 원유 선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주식 시장 회복세와 달리 원유값은 빠르게 반등하지 않았고 일부 투자자는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반등세로 돌아선 때는 미국이 선거철로 접어든 지난해 9월 이후부터다. 당시 30~40달러대에 머물던 WTI(서부텍사스유) 가격은 지난 3월 5일 기준 67달러까지 쭉 상승했다. 미국 WTI 선물 가격은 올해 초 배럴당 47달러였으나 두 달 사이에 20달러 가까이 올랐다. 201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 역시 각각 66달러, 68달러대로 올라섰다. 브렌트유 5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71달러(3월 8일 기준)까지 뛰었는데, 지난해 1월 이후 14개월 만에 최고치다.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다. 미국 원유 생산이 한계를 보이고, OPEC+가 감산 계획을 밝히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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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례적 한파에 시추 능력 떨어져
▷중동선 감산 유지…경기 부양책 기대
최근 가격이 70달러 언저리까지 올랐다고 해도 100달러에 도달하려면 50% 가까이 더 뛰어야 한다. 꽤 먼 길인데 벌써 낙관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공급이 크게 늘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제1요인으로 꼽는다. 그간 수요가 증가하면 산유국은 공급을 늘려 수요를 맞춰왔다.
하지만 이번 상승장에서는 다르다. 미국 원유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미국은 2018~2019년 세계 원유 생산 1~2위를 다투는 최대 산유국이다. 영향력이 큰 미국의 2020년 생산량은 2019년 대비 20% 이상 줄었다. 텍사스에서의 이례적인 한파로 생산 차질을 빚었고, 수요를 따라갈 원유 시추기가 충분하지 않은 게 주요 이유로 꼽힌다.
“2015~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셰일가스 산업을 견제하려고 공격적으로 증산했고 유가가 하락했다. 2015년 1223개였던 미국 내 원유 시추기는 2016년 316개까지 줄었다. 그 숫자는 1년 만에 722개로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 여파로 원유 시추기를 200개 미만으로 줄였고 현재도 300개에 불과하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 속도에 견줘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의견도 다르지 않다. 그는 “국제유가는 수요보다 공급에 영향을 받는데, 수요 변동이 크지 않은 반면, 공급은 정치적 요인 등으로 증감폭이 크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미국 수급 조절 능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친환경 정책을 내세운 미국 행정부는 새로운 시추기 증설에도 부정적이다.
미국 영향력이 떨어졌다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가 산유량을 늘린다면 유가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4월에도 하루 720만배럴 감산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루 평균 산유량을 150만배럴가량 늘릴 것이라는 시장 예상과는 반대라는 점에서 유가는 더욱 상승세를 탔다.
프린스턴에너지어드바이저스는 “수요 대비 공급이 약 3.5~3.6% 부족하다”며 “공급 부족이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릴 잠재력”이라고 밝혔다. 헤지펀드들은 단기·중기로 봤을 때 유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고 매수세를 늘리는 추세다.
수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며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특히 최근 미국 의회가 승인한 1조9000억달러(약 2150조원) 부양책이 미국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수요 증가도 호재다. 중국은 코로나19에도 지난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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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친환경 정책에 되레 유가↑
▷전기차 시대, 전기 공급원이 기름?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원유 대신 친환경에너지를 선호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 정책이 되레 유가를 끌어올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환경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대거 지어야 한다.
또한 송전소나 송전탑 등 배전시설, 도로와 통신 등 기초 인프라까지 대규모 건설 공사가 필요하다. 건설 중장비가 대거 동원되고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 석유 수요가 크게 늘어나 유가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기름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전기차를 충전할 전기를 외부에서 받아야 하는데, 친환경 발전만으로는 이를 채우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풍력발전소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고지대에 지어야 한다. 태양광은 비가 오지 않는 사막 지형이 효율적인데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결국 기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늘려야 하고 유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가 상승과 맞물려 에너지 주가도 상승 추세다. 미국 대표 정유회사인 엑슨모빌과 셰브론 주가는 연초 대비 30∼40% 정도 올랐다. 셰브론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해 4분기 4850만주를 사들인 종목이기도 하다. 국내 에쓰오일 주가도 연초 대비 20% 가까이 상승했다.
물론 비관론도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산유국이 계속 생산량을 줄일지,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살아날지 알 수 없다. 수요와 공급 그 모든 것이 아직 확실치 않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반대 진영에 있는 이란이 원유 수출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유가 하락 근거의 한 사례다.
석유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중국 원유 저장고는 가득 찼고 인도에서는 유가가 올라 수요가 위축됐다”며 “석유 제품 가격 급등도 부담”이라고 했다. 지난 2월 인도 석유 소비량이 5% 줄어든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글로벌 금융사 전망치는 100달러까지는 아니지만 상승세에 무게를 둔다. 골드만삭스는 상반기 75달러, 하반기 80달러 전망치를 제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잠재력’이 있다면서도, 향후 5년간 유가가 50~70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광래 애널리스트는 “유가 추가 상승은 신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향후 국제유가는 완만한 상승세 궤적을 그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1호 (2021.03.24~2021.03.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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