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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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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기 신도시 남양주 왕숙…"LH 못믿겠다 GH 포함시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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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 위치한 한 상추농장. 진건읍은 남양주 왕숙 제 1지구에 해당하며, 3기 신도시 추진에 따라 토지 보상을 위한 지장물 조사가 예정돼있다.[사진=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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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노원구 상계로 노원역에서 차로 30여분 달려 찾아간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으나 도로를 따라 정부의 3기 신도시 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곳은 정부가 수도권 3기 신도시로 지정한 남양주 왕숙 제 1지구에 포함되는 곳으로, 최근 광명·시흥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 사태가 불거졌다. LH 직원 1명이 이곳 땅을 투기 목적으로 사들인 정황이 포착되면서 그동안 신도시 지정을 반대하던 왕숙신도시 내 주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진건읍 인근에서 거주한다는 70대 한 농민은 "여기서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일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정부 정책으로 신도시에서 계속 밀려났다. 땅 값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 소유 농지가 2만평에서 7000평으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 농민은 "지금 이 곳 남양주 진건읍 땅도 도로에 인접해 평당 300만원은 받을 수 있는 땅인데, 정부에서 150만원을 얘기하고 있다"며 "이렇게 적게 보상주고 개발해 LH는 수 조원 남겨 먹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곳 농민들은 3기 신도시 발표 후 정부가 토지 수용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보상 액수를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남양주 근방 농지에서는 시금치, 상추, 얼갈이, 배추와 같은 엽채류가 자라나고 있었는데, 운송 과정에서 농작물이 상할 수 있어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고 했다. 농민들은 "정부 보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원에서 공탁을 걸어 강제로 쫓아낸다"며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농지 주위를 흙으로 싸서 물 빠질 데 없는 저수지를 만들어버린다"고 토로했다.

3기 신도시 지정에 달갑지 않은 농민들 입장에서 LH 투기 의혹은 정부 토지정책에 불신을 키웠다. 공대석 남양주 왕숙지구 진접주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주민들은 언젠가 남양주 일대 그린벨트가 해제되면 자기 땅을 자기 맘대로 개발할 줄 알았는데, 문득 3기 신도시 발표로 토지가 수용됐다"며 "그린벨트라서 토지 표준지가가 평당 30~40만원에 불과한데, 이 금액을 기준으로 보상해주겠다 하니 보상 받아도 갈 데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시하는 토지 보상금을 받게 될 경우 남양주를 떠나 경기도 포천시나 강원도 경계지점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 위원장은 "협의택지와 아파트를 받기 위해 LH가 제시하는 협의안에 이의신청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LH 측에서 말을 바꿨다"며 "나중에는 협의택지와 아파트를 다 줄 수 없으니 주민 추첨을 통해 지급한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현재 남양주 왕숙지구 일대는 주민들의 반발로 토지보상을 위한 지장물 조사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왕숙2지구에 포함된 남양주 일패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A씨는 "3기 신도시 공표를 했으면 빨리 진행을 해야 하는데, 1지구는 어느정도 의견 합일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기 2지구는 조합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토지 감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건읍 일대에서 농업회사를 운영하는 B법인 관계자도 "지난 8일부터 감정평가를 하겠다고 공문은 왔는데, 그 후 어떻게 조사가 진행되는지 모르겠다"며 "지난 2018년 10월 이곳에 이사온 후 두 달 만에 수용 발표가 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차라리 보상 문제가 빨리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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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왕숙지구 진접주민 대책위원회가 트럭에 현수막을 걸고 3기 신도시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사진=김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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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 땅 투기 논란 속에 3기신도시 사업에서 LH 지분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남양주시민과 왕숙지구 강제수용주민을 중심으로 GH의 왕숙지구 사업참여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남양주시 시민단체인 다산신도시총연합회(이하 다산연)는 지난 15일 3기신도시 남양주 왕숙지구의 독점적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견제할 수 있도록 경기주택도시공사(GH)를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3기신도시 왕숙지구는 남양주시 진접·진건읍, 양정동 일원 1134만㎡ 6만9000가구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LH가 99%, 남양주도시공사가 1%의 지분으로 참여한다.

이진환 다산연 회장은 이날 "주거용시설 건설에만 급급하고 기반시설과 자족시설이 부족한 개발방식은 사라져야 한다"며 "지역에 걸맞는 개발과 지역발전을 위한 개발이익의 재투자를 위해 GH의 사업 참여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어 "시민들은 LH의 교통대책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왕숙신도시가 6만6000가구에서 6만8000가구로 가구수는 늘었지만 교통대책인 수석대교가 6차선에서 4차선으로 축소된 것도 LH 독점적 지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8월로 예정된 3기 신도시 등 공공주택 첫 사전청약 일정이 뒤로 밀리거나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도 있었다.

남양주 진접읍에서 만난 한 시민은 "다산지구나 진접지구 집값이 너무 올라 왕숙신도시 사전 청약만이 내 집 마련의 유일한 희망이었다"면서 "정부 1차 조사에서 왕숙신도시에서 투기한 LH 직원이 한명이 나왔다는데 이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3기 신도시 철회는 낡은 주택에서 수십년간 개발을 기다려온 도심지 주민들, 전월세 전전하는 우리 같은 무주택자들에게 가혹한 일"이라며 "투기범죄 수사는 수사대로, 공급은 공급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우려에 정부는 지난 17일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경우에도 공공주택 사전청약에 참여한 수요자가 불이익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전청약 당첨자에 대해선 재당첨 제한도 적용하지 않을 계획이어서, 본청약 전에 다른 주택을 분양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사전청약은 지구계획 승인 뒤 본 청약 1~2년 전에 아파트를 조기 공급하는 제도다. 올해 3만 가구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3만2000가구의 사전청약 입주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신도시(지구)별 청약시기는 인천 계양(1100가구)이 7월로 가장 빠르고 이어 남양주 진접2(1400가구), 성남 복정 1·2(1000가구), 의왕·서울 노량진 수방사부지(200가구) 8월, 남양주 왕숙2(1500가구), 성남 낙생(800가구), 시흥 하중(1000가구) 9~10월,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과천·안산 11~12월 실시한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robgud@mk.co.kr / 김현정 기자 hjk@mk.co.kr / 김정은 기자 1derlan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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