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애틀랜타 총격 사건

"애틀랜타 총격 테러는 아시아·여성 혐오 중첩된 결과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범적 소수인종 신화, 아시아계 혐오 가려
희생자 대부분 여성… 혐오·구조적 폭력 탓
한국일보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사건으로 4명이 숨진 애크워스의 영 아시안 마사지 숍 앞에서 17일 한 아시아·라틴계 남성이 손팻말을 들고 아시아계 혐오범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계 혐오범죄에 충격 받았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멜리사 메이 보르자 미국 미시간대 미국문화학 교수가 일갈했듯, 16일(현지시간) 일어난 조지아주(州) 애틀란타 연쇄 총격사건은 ‘예고된 참사’였다. 한마디로 “터질 게 터졌다”는 얘기다. 최근 미 전역에서 잇따랐던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공격은 미국 내 반(反)아시아 정서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줄기찬 경고이자 참극의 전조였던 셈이다.

참극 전조 19세기 싹 터... 혐오 불 지른 트럼프


최근 트위터에서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라’는 해시태그(#AsiansAreHuman, #StopAsianHate) 운동도 활발히 전개됐지만, 애틀랜타 참사 전까지는 그 차별의 뿌리가 얼마나 유구한지 환기하지 못했다. 1882년에는 중국 출신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중국인 배제법’이 만들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에는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 외국인’으로 간주해 무려 12만명을 수년간 강제수용했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엔 이슬람 공포증이 확산하며 남아시아계가 이유 없이 공격당하기도 했다. 미국이 위태로울 때마다 인종주의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고, 아시아계는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표적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주립대 ‘혐오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 16개 주요 대도시에서 아시아계 혐오범죄는 2019년보다 14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혐오범죄가 7%포인트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주변에서 불편한 시선을 느꼈다’(39%)거나 ‘비난과 조롱의 대상 됐다’(31%) ‘공격 위협을 느꼈다’(26%) 등 혐오 피해 경험을 묻는 설문에도 아시아계가 가장 높은 비율로 응답했다. 아시아계 차별을 연구해 온 채리사 체아 볼티모어대 교수는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인종화’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실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일보

16일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마사지업소.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혐오에 불을 지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되고 있다. 미 일간 시카고트리뷴은 “전임 대통령과 극우주의자들이 외국인 혐오와 백인우월주의로 무장한 지지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고 아시아계를 악마화한 것에 비춰볼 때 아시아계 혐오범죄 증가 현상은 전혀 미스터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흑인이나 라틴계에 비해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은 그동안 덜 조명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과 미디어를 통해 아시아계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부유하며 고학력인’ 모범적인 소수인종, 이른바 ‘모델 마이너리티’로 인식된 탓이 크다. 백인 사회는 아시아계를 중상류층으로 여긴다. 보르자 교수는 “미 역사를 관통하며 아시아계가 겪은 숱한 차별이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아시아계가 인종차별을 경험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사건 현장 중 한 곳인 애크워스 지역의 골드 스파 외곽에 17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꽃과 포스터가 놓여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양 여성은 순종적"... 폭력에 더 무방비


성별ㆍ계급ㆍ권력 간 역학관계가 무시된 ‘스테레오타입화’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이 바로 ‘아시아계 여성’이다. 아시아계 혐오범죄 신고 사이트인 ‘스톱 AAPI 헤이트(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에 지난 1년간 보고된 피해 사례 3,795건 중 여성은 63%로 남성(29%)보다 2.3배 많았다. 애틀랜타 총격사건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아시아계 혐오범죄’를 넘어 ‘여성 혐오범죄’를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NN방송은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은 유순하고 순종적이며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중첩되면서 아시아계 여성은 폭력에 더욱더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도 “아시아계 여성들이 수년간 반아시아 정서에 경종을 울렸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정형화된 인식 때문에 자신들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힘들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이후 아시아계 여성은 경제적으로도 취약해졌다. 미 국립여성법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6개월 이상 장기 실업 상태인 아시아계 여성은 44%로, 흑인(40.8%) 라틴계(38.3%)보다 월등히 높았다. 애틀랜타 총격사건 희생자들도 저임금 서비스 업종에서 일했다. 비영리 단체 ‘아시아계 미국인 급진 정의’ 소속 피 응우엔 국장은 “애틀랜타에서 살해된 아시아계 여성들이 매우 취약한 저임금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성 혐오와 구조적 폭력, 백인 우월주의의 복합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