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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이슈 애틀랜타 총격 사건

美 수사 당국 "애틀랜타 총격범 '性 중독'" 초점... 인종 증오 범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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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운영 마사지숍·스파 순회 범행인데
해당 장소는 아시아계 소수자 떠올리는 장소
"총격범에게 나쁜 날" 경찰 두둔에 비난 봇물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 한인 4명
한국계 美 정치인, 오바마 "증오범죄 막아야"
한국일보

한 흑인이 1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참사 현장인 골드스파 정문 앞에서 인종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1인 연대 시위를 하고 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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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희생된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의 전모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3곳의 마사지숍과 스파를 1시간에 걸쳐 찾아다니며 범행을 저지른 데다 미국 내에서 ‘마이너리티(소수자)’로 인식된 장소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인종 증오 범죄’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출범부터 차별과 분열 극복, 통합을 내세운 것도 이 같은 미국 내 경각심과 무관치 않다. 희생자가 주로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 혐오 범죄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 수사 당국은 17일(현지시간)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21)을 살인ㆍ중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용의자의 ‘성 중독(sex addiction)’ 전력을 범행 동기와 연계했다. 당국의 초기 수사 발표를 놓고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용의자 차량 GPS 추적, 추가 범행 막아


수사 결과 롱은 16일 오후 5시부터 애틀랜타와 근교 애크워스의 마사지숍과 스파 3곳을 잇따라 찾아가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 등 총 8명이 숨졌다. 애틀랜타 북동부 지역 스파 2곳에서 희생된 한인 4명은 50~70대 여성으로, 모두 업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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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총격사건이 발생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아로마테라피 스파 건물 앞에서 경찰이 16일 현장을 지키고 있다. 애틀랜타=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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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났던 롱은 첫 총격 후 3시간 30분 만에 애틀랜타에서 240㎞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체포됐다. 사건 발생 직후 공개된 영상 속 인물이 아들이라고 롱의 부모가 지역 보안관실에 제보하고, 차량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기가 달렸다는 사실을 알린 덕분이었다. 롱은 플로리다주에서 추가 범행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용의자 롱은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총격이 인종적 동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당국은 브리핑에서 롱의 성 중독 전력을 언급하며 “증오 범죄인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 중인 현지 경찰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범행을 저지른) 어제는 그에게 정말 나쁜 날(a really bad day)이었다”며 롱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백인 용의자에 대한 특혜”, “희생자에 대한 또 다른 가해” 등 질타가 쏟아졌다.

롱이 스파를 ‘없애버리고 싶은 유혹의 대상’이라고 표현했다는 언급도 있었다. 미 CNN은 롱이 2019년부터 6개월간 성 중독 재활시설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성 중독’ 언급에 책임 회피 논란 커져


수사 당국의 성 중독 언급에 책임 회피 논란도 이어졌다. 희생자 대부분이 아시아계였고, 롱이 특정 업소를 찾아간 것 자체가 인종·여성 차별 의도를 보여주는데도 범행 동기를 혐오가 아닌 개인 정신 건강 문제로 몰아간다는 지적도 나왔다. 롱은 범행 전 페이스북에 “모든 미국인은 우리 시대 최대의 악인 중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라는 글을 올리는 등 아시아계 혐오 인식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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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1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 애크워스의 마사지숍 ‘영스 아시안 마사지 팔러’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아시아계 혐오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 이곳을 포함한 애틀랜타 일대의 마사지숍 1곳과 스파 업소 2곳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으로 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애크워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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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미 정치권과 한인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한국계인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은 “인종적 동기로 인한 아시아ㆍ태평양계 대상 폭력 급증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 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총격범의 동기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희생자 면면을 보면 멈춰야 하는 아시아계 겨냥 폭력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것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내 아시아계를 겨냥한 공격과 차별도 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 이익단체에 접수된 아시아계 증오범죄 피해 사례가 지난해 3월 이후 1년간 3,795건에 이르렀다. 미 하원은 증가하는 반(反)아시안 증오 범죄와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주 안으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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