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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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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주도 공공개발, 어쩌다 이지경...신도시 총체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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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주도 개발이 공공 부패를 낳고 있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유 전 의원은 이번 LH 사태에 대해 “개인 일탈이 문제가 아니라 공공 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공공 주도 개발과 관련해 전반적인 사업은 국토교통부가 기획하고 LH가 실행한다. 기획 주체인 국토부와 실행 주체인 LH는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독점할 수 있다. 이들은 민간이 소유한 토지를 강제 수용하면서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유 전 의원 주장이다.

LH 개발 독점권과 관련된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경기도 판교에서는 10년 공공 임대 분양전환 주택의 분양가 산정을 놓고 LH와 입주자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입주자 측은 �캪H가 과도하게 높은 분양가를 산정해 개발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며 반발한다. LH 사태를 계기로 공공 개발 신뢰도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LH가 주도한 공공 개발이 신뢰를 잃은 배경은 무엇일까.

매경이코노미

신뢰 잃은 배경 1 느슨한 감시

▶허술한 LH 내부 관리 시스템

공공 개발이 신뢰를 잃은 배경으로 무엇보다 법망 자체가 느슨했다는 점이 꼽힌다.

LH 같은 공공기관에서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할 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7급 이상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재산 신고를 한다. 하지만 개발 사업 관련 공기업, 즉 LH 직원은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직원의 부정 행동을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도 미비하다.

LH에서는 임직원 행동강령 제26조를 통해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거래 등을 제한한다.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주식 등 유가증권·부동산(권리를 포함) 등과 관련한 재산상 거래 또는 투자를 하거나 타인에게 그러한 정보를 제공해 재산상 거래 또는 투자를 돕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미공개 정보 이용에 대한 사실 입증이 어려운 데다 부동산 거래 신고 의무가 없다. 즉 결정적인 제보 등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내부 감사를 통해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LH는 내부 임직원들이 사업 대상 토지를 매입하는 것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나 확인 절차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LH 임직원 사전 투기 의혹과 관련해 ‘LH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허술한 관리감독 시스템은 결국 ‘제 식구 감싸기’와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확보한 ‘2020년 12월 LH 감사 결과 처분 보고서·관련 자료’에 따르면 LH는 2018년 고양 원흥지구 개발도면을 유출한 직원 3명에 대해 경고·주의 처분만 내렸다. ‘과천 신규 공공 주택지구 사업 후보지 유출 건’ 역시 당시 자료 유출에 관여한 LH 직원 3명은 ‘주의’ 처분에 그쳤다. 이 중 1명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LH 사장 재임 시점인 지난해 1월 승진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원 측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큰 부동산 관련 계획의 사전 유출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개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기업 직원들이 제 잇속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음에도 LH는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솜방망이 처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5~2020년까지 6년간 LH 징계위원회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한 징계 건은 총 59건. 하지만 토지 투기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내부 감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행정상 처분·주의·경고 등 징계를 받은 LH 직원은 2016년 566명에서 2019년 823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징계 사유는 대다수가 뇌물이나 금품 수수였다. 내부자 고발을 통해 처음으로 이 같은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것은 LH의 취약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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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흥지구는 이번 투기 논란으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택지지구다. LH 직원들이 이곳에 대거 투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공 주도 개발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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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배경 2 낙하산 인사

▶공공기관 감투는 정권 전리품?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공기관 감투는 ‘정권 전리품’이라는 인식 아래 낙하산 인사가 감행되면서 제대로 된 내부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 역시 공공 개발이 신뢰를 잃은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LH의 허술한 이사회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LH 이사회 임원 14명 가운데 4명은 현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이다. 허정도 상임감사, 윤석인 비상임감사, 김정호·전숙희 비상임이사다. 이들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부지 투기 의혹 사건이 발생한 2019년에도 이사로 재임 중이었다.

허 상임감사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미디어 특보를 맡았다. 윤 비상임감사는 변창흠 장관(당시 세종대 교수)과 함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故 박원순 선대위에서 일했다. 김 비상임이사는 부산인권센터 운영위원 출신. 부산인권센터는 1997년 설립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공동대표를 지낸 곳이다. 전 비상임이사는 와이즈건축사무소 대표로 노무현시민센터를 설계한 인연이 있다.

LH는 상당수 사외이사가 시민단체 출신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사외이사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LH 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고 보장된 급여만 챙기려고 한다”며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는 내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방치된 또 다른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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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주민들은 집집마다 빨간 깃발을 내걸고 ‘저항’에 나섰다. 사진은 공공 주택지구 개발이 예정된 동자동 모습. <반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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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배경 3 구조적 문제

▶거대한 조직 LH 홀로 공공 개발 독점

�캪H를 아예 해체해야 한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나온 얘기다.

단순히 이번 투기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LH 조직 자체가 너무 비대하고 현 구조상 홀로 공공 개발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받는다.

LH는 대부분 택지와 공공 인프라를 조성해 민간 건설사에 땅을 팔고 있다. LH가 직접 지은 아파트 역시 분양을 통해 팔거나 분양전환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LH는 공공 주택의 80%를 공급하며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특히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합쳐지면서 LH 조직은 너무 커졌다. 사업장도 많다 보니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워졌다. 여러 이유로 LH ‘조직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린다. LH 내부 직원의 부정부패를 예방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작은 조직이 낫다는 논리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캪H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덩치가 큰 공기업이기 때문에 비효율이 상당할 수 있다”며 “직원 상당수가 자기 노력 없이는 공직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강도 높은 조직 쇄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캪H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분화해야 한다.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주택 공급은 도시주택부 같은 (정부) 부처를 만들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계획을 세우고, LH는 시행사로서 기능 분화를 해야 한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부동산 시장 파장은

▷토지 보상 지연에 신도시 개발 차질 우려

“정부가 집주인에게 알리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개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항의하니 ‘기밀 사항’이라 알리지 못했다고 말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투기 성공을 위한 기밀 유지였네요.” 용산구 쪽방촌 한 주민의 토로다.

서울역 근처, KDB생명 빌딩 뒤에 자리 잡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주민들의 분노를 담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신도시 투기 세력 LH 서울역 동자동 공공 개발 자격 없다” “내 무덤 위에 공공 임대 지어라.”

살벌한 현수막을 뒤로한 채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치 전쟁터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허름한 건물 곳곳마다 걸린 빨간 깃발이 시선을 빼앗는다. 집주인들은 ‘저항의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갈 곳 없는 세입자까지 생각해 재개발 계획을 다 제출했던 곳이다. 주민들이 지자체와 잘 협상해나가고 있던 곳에 왜 갑자기 일방적인 정부 개발안을 밀어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투기 의혹까지 나온 이상 집주인들은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

오정자 후암특계1구역(동자동) 준비추진위원장이 전하는 분위기다.

LH 투기 의혹은 공공 개발 전체의 문제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LH가 공공 개발을 독점하다시피 해왔는데 광명, 시흥 이외 다른 지역은 깨끗하겠느냐는 의심 때문이다. LH뿐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 투기 의혹까지 쏟아지면서 공공 주도 개발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기고 있다.

공공 개발 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정부를 못 믿겠다’는 주장을 쏟아낸다. 공공 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는 지난 3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캪H 직원 땅 투기 의혹 관련 전수조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토지 보상 협의 등 어떤 협조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3기 신도시 주민 반발도 만만찮다. 논란의 중심이 된 광명·시흥은 물론 기존 3기 신도시였던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등 원주민들은 일제히 ‘개발 반대’를 외친다. 이들 지역에서는 현재 토지 보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중 보상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은 하남 교산 신도시. 지금까지 60%가량 보상이 진행됐다. 하지만 LH 직원 투기 의혹이 불거진 후 일부 주민들은 3기 신도시 전수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3기 신도시가 제때 조성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당장 올해 7월부터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시작된다. 물론 토지 보상을 마쳐야 사전 청약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토지 보상은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절차다. 보상 절차가 지연되면 실제 입주 시기는 한없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인천 계양이나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 등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성토가 강하게 들린다. 3기 신도시 주민 중심으로 구성된 공전협은 “모든 3기 신도시 지역에서 투기 의혹이 완전 해소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정부합동조사단 발표에서 3기 신도시 주무 부서인 국토부 직원 중 한 명이라도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이 나온다면 신도시 사업은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설령 조사 결과 투기 의혹이 없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처음 의혹을 폭로한 민변과 참여연대는 ‘추가 제보’가 있다며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칫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민간이 LH에 토지를 넘기면 공공 주도 개발을 통해 수도권, 지방 5대 광역시에 3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LH에 개발 주도권을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라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0호 (2021.03.17~2021.03.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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