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시위에 참여한 한국인 승려 “과거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가 떠오른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율원스님은 2010년 한국을 떠나 미얀마의 승려 ‘빤디따’가 됐다. 한국의 승복을 벗고 미얀마에서 새로 계를 받아 남방 가사를 걸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2월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직후 라카인주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에 참여했다. 빤디따 스님은 14~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쪽에서 발생한 일을 지구 반대편에서 아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나의 일과 남의 일이 따로 없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경향신문

빤디따 스님은 지난달 군부 쿠데타 직후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참여했다. 빤디따 스님은 이 사진에 미얀마어로 “빛이 있으면 누굴 잡아가기 어렵고 밝은 곳에서는 불을 지르기도 어렵고 그래서 빛은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물과 바람 역시도 고마운 존재다. 그 중에 고마운 것은 가족이다. 부모는 가르쳐주고 입혀준 것이 있어서 고맙다. 이러한 모든 것은 자유로운 국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니, 국가가 고마운 것이다.”라고 썼다. 빤디따 스님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얀마 상황은 어떤가. 14일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들었다.

“14일도 굉장히 많이 죽었다. 저녁에 30명 넘게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시위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70명이 넘게 죽었다는 말도 나온다. 15일 현지 뉴스에서는 쿠데타 이후 모두 131명이 죽었다고 한다. 밤 사이에 많은 사람이 붙잡혀 가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도 (군경의) 스파이가 많이 생겨서 경찰에 (시위대를) 일러주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심하는 상황이 됐다.”

-현지 승려들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나도 2월4일 첫 시위부터 마을사람들과 참여했다. 군부가 거리에 나뭇가지로 1~3차 바리케이트를 쳐놨더라. 내가 맨 앞에 서서 첫 번째 바리케이트까지 갔는데 사람들이 안따라왔다. 동료 스님이 뒤에 와 계시라고 나를 잡아 당겼다. 그때까지 몰랐다. 3번째 바리케이트까지 가면 바로 실탄 사격을 한다는 걸. 한국처럼 전경, 의경하고 으쌰으쌰하는게 아니라 바로 총을 쏜다. 이걸 아니까 여기 사람들은 앞으로 안나간 거다. 사람들은 시위한다고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저쪽은 실탄이 있다.”

경향신문

빤디따 스님이 미얀마를 위해 공양을 드리고 있다. 빤디따 스님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위험하진 않나.

“시위에 몇번 나가니까 내가 사는 지역의 파출소 소장이 전화가 왔다. ‘스님 시위 나가지 마세요. 여기 한국 아닙니다. 큰 일 납니다’라고 말하더라. 내가 파스 몇 장을 준 인연이 있는데 그걸 생각해서 연락이 온거다. 한국으로 치면 종단 호법부 스님에게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조심을 해야된다. 스님 이름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위대 300인분 정도 밥을 해주고 페이스북으로 한국 시민들에게 현지 상황을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군인들이 길거리에서 검문을 하는데 핸드폰에 시위 관련 사진, 동영상이 있으면 잡혀간다. 언제 밤에 경찰에 끌려갈지 모른다.”

-미얀마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떻게 시위에 나가게 됐나.

“여기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선하고 순수하다. 옛날에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스님들이 (시위를) 이끌어주고 할 게 없지만, 여기서는 필요한 부분이 있다.”

-경제나 코로나 상황은 어떤가.

“경제가 멈추면서 상황이 좋지 않다. 양곤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의 금탑에서 군부가 금판을 뜯고 있다. 쿠데타 전에 미얀마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았는데 시위 때문에 많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 병원도 파업을 해 치료도 어렵다. 그렇지만 코로나19는 이제 더이상 걱정 거리가 아니게 됐다.”

경향신문

빤디따 스님은 지난달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직후 라카인주에서 열린 반군부 시위에 참여했다. 스님의 뒤로 군인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빤디따 스님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상자가 늘어나는데 시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국제사회가 경고를 해도 군부는 다음날 더 많이 살생하고 있다. 군부는 지금까지 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일 것 같다. 내가 사는 이 시골 마을에도 경찰차, 군인이 밤마다 돌아다닌다. 장담하긴 어렵지만 시위는 그래도 계속될 것 같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주 한국 정부의 제재 소식에 미얀마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에는 군부와 여전히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안다. 최근 한국기업에 다니는 한 노동자가 반군부 시위에 참여했는데 다음날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했다’고 한다. 그 기업도 군부와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더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군부를 제재해서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쪽에서 발생한 일을 지구 반대편에서 아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나의 일과 남의 일이 따로 없다. 이쪽의 고통은 저쪽의 고통으로도 이어진다. 미얀마 군부는 인간의 존엄과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여성, 외치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