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용보도 시 프로그램명 'JTBC 아침&'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 방송 : JTBC 아침& / 진행 : 이정헌
[앵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벌써 40일가량이 지났습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계속해서 거리로 쏟아져나와 저항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경의 폭력진압은 날이 갈수록 더욱 난폭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민간인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군경의 잔혹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군부의 진압이 거세질수록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인들의 열망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미얀마인들도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면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맞서고 있습니다.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지도자인 웨 노에 흐닌 쏘 씨와 현재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웨 노에 씨와 미얀마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감사합니다.]
[앵커]
요즘 얼마나 힘드십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2월 1일부터 한 달 10일 정도 지났는데 24시간 지금 애타고. 왜냐하면 저는 타지에 와 있기 때문에 심신이 다 지칠 대로 지쳤고 현지에 있는 지인들을 되게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데 한국에 사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현재로서는 지금 13년차,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고요.]
[앵커]
한국인 남편과 지금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계시고요. 재한미얀마청년연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조직을 좀 간단히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이게 2월 1일에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바로 3~4일 정도에 바로 조직을 했습니다. 주로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다음에 한국에 살고 있는 미얀마 노동자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아주 크지는 않은데 한국 내에서는 기자회견이라든가 광화문이라든가 UN 앞에 가서 1인시위 그런 것도 하고. 그다음에 조계사 스님들이랑 함께 희생자를 위한 추모회도 하고 있고 내일이면 미얀마대사관에서 조계사까지 저희가 오체투지를 할 예정입니다.]
[앵커]
온몸을 땅에 엎드려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오체투지잖아요. 건강한 일반 성인들의 경우에도 굉장히 어려운 그런 일인데. 제가 듣기로는 지금 아이를 가지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 굉장히 힘드실 텐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저는 내일 오체투지라는 게 몸을 던지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배의 상태가 있어서 저는 바로 옆에 지지단으로, 같이 함께 행진을 할 거고요. 나머지 재한미얀마청년연대 팀원들이 같이 하고 조계사 스님들이랑 함께할 예정입니다.]
[앵커]
그만큼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한 열망이 크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그렇죠. 그만큼 우리는 간절하게 지금 미얀마 내에 있는 미얀마 국민들이랑 함께 못하는 것이 지금 한국에서도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겠다는 의지가 큰 거죠.]
[앵커]
그리고 지금 배 안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 또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서 맞서고 계신 거죠.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그렇기도 한데. 사실은 저는 1962년부터 미얀마 군부통치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제한적인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한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저한테. 그거에 대한 저항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도 있고 그다음에는 2007년도 샤프란 혁명 때 스님들이 주도해서 이런 똑같은 행진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열심히 최루탄 맞고 같이 함께 싸웠는데 지금 한국에서 제가 나와 있기 때문에 같이 함께 싸워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큽니다. 그래서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저는 그런 후회도 생기는 것도 싫고. 지금 여기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무리를 하더라도 해야 되겠다라는 그런 의지가 큽니다.]
[앵커]
가슴에 맺힌 한이 굉장히 많으시군요. 지금 미얀마 현지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의 상태가 굉장히 걱정이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맞습니다. 주로 저희가 사용하는 건 페이스북 메신저로 많이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 보면 상대방이 몇 분 정도에 이걸 사용하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인들이라든가 저한테 많이 문자를 보내는데. 가족 포함해서 지인들이 20분 전, 2시간 전만 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애가 타는 거죠. 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체포, 데려간 건가 이렇게 마음을 졸일 정도로 24시간 저는 휴대폰을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앵커]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을 지금 40일 가까이 계속 이어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금 소셜미디어라든지 인터넷을 통해서 다양한 현지 소식들을 계속해서 받고 계십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맞습니다. 특히 저는 여기서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에 있는 제 지인들, 그다음에는 페이스북에 있는 지인들이 친구들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나와 있기도 하고 그다음에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저라도 미얀마 사람들이 보내주는 그런 걸. 한국어로 번역해서 한국 기자님들한테 좀 뿌려 달라. 너라도 우리가 의지할 수밖에 없다. 너만은 좀 노력해야 되겠다 싶어서 보내주면, 보내주는 대로 저는 한국어로 번역해서 10개면 10개로 제가 아는 모든 기자님들한테 뿌린 거죠. 그 10개 중의 1개라도 실리면.. 미얀마 사람들의 힘이 지금 간절하게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라는 걸. 저는 중간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어제 미얀마에서 들려온 소식 중의 하나가 미얀마 경찰이 인도로 넘어갔는데. 그 경찰이 증언하기를 경찰 지도부에서 죽을 때까지 총을 쏴라 이렇게 지시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경찰 그리고 군부의 탄압과 강경진압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 정도로 지금 심각하다고 얘기들을 듣고 있습니까?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최근에 보면 3월 8일 양곤에 탕십이 33개가 있어요. 여기로 치면 동네죠. 33개 중에는 산천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산천은 경찰이, 군인이 생각하기에는 블랙 동네예요. 그만큼의 거기 주민들의 연대가 끈끈하고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3월 8일 같은 경우에는 지옥의 밤이라고 할 정도로 그 상황이 되게 좋지 않았었고 밤에는 아기들이 우는 소리. 이게 제가 좀 전에 받은 문자인데 잠깐 보여드려도 될까요.]
[앵커]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지금 화면에 잘 잡힐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총소리도 들리고요. 잠깐만 계속 좀 보겠습니다. 총소리도 들리고 지금 사람들의 비명소리나 고함소리들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여러 차례 영상들을 계속 받고 계실 테니까 영상이 좀 준비됐으면 한번 보면서 얘기를 이어가볼까요. 처음에는 곤봉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써서 시위대를 폭행하고 그랬잖아요. 지금 나오는 영상도 보면 폭행하는 영상들입니다. 곤봉을 들고 있고요. 사실 저 영상을 보면 41년 전 80년 광주 5.18을 떠올리시는 한국 국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때와 정말 비슷한 그런 군경의 강력한 진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장면들은 최근의 일들입니까? 계속해서 지금 저런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는 거죠.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그렇죠. 지금 보시는 이 장면은 아마 2월 14, 15일 정도에. 보름 정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고요. 경찰이 때리는 것을 맞고 있는 신체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기도 해요. 다들 도망치는데 이 친구만 도망치지 못하니까 그냥 맞으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이건 조금 그나마 괜찮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최근에 와서는 젊은 친구들을 타깃으로 해서 엄청나게 밤이든 낮이든 가릴 것 없이 24시간 저희한테 아주 강압적으로 진압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력진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가슴 아픈 것들은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만 최근 3월 8일 부터 오늘날까지는 젊은층 우리가 흔히 말하는 Z세대라고 95년생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젊은층을 타깃으로 지금 많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통계도 제대로 안 나오고요. 3월 8일에 산천이라는 동네를 포위해서 데려간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지금 통계가 안 나와서. 도대체 어디로 데려갔지, 감옥은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알 수 없는 이 실종된 상태가 너무 걱정스럽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소통의 창으로 저는 이 유튜브라든가 페이스북 문자를 통해서 소식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교 역할을 해야 되니까. 그중에서 저한테 한국어를 배워간 미얀마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저녁에 만약에 제가 문자가 없으면…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남기고 그날도 시위대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발 다음에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라. 그래서 너의 소식을 나는 최대한 기다릴 테니까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나한테 보내주면 된다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너무 가슴 아프고 함께 싸우지 못하는 거에 대해서도 너무 죄책감이 들어요.]
[앵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앞으로 또 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어서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상황입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앞서 제가 말씀을 드린 것처럼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 시민들의 아픔을 같이하고 있고요. 그들의 지금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들.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세요?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지금 저도 한국에 있는 시민단체와 저희 재한미얀마청년연대가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서 함께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한국 시민들이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걸 저는 몸으로 되게 느꼈고. 그다음에 실제로도 저희는 활동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는 거에 대해서도 대단히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말 한마디, 한마디 또는 응원과 지지가 저는 재한미얀마청년연대의 페이스북에서 페이지를 통해서 한국 분들의 응원 메시지 하나하나를 번역하는 걸 저희 팀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한국에서 지지와 응원해 주는 거에 대해서도 미얀마 사람들이 지금 알고 있고요. 그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희가 민주주의의 봄이 다시 되돌아올 때까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앵커]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현재로서는 한국에서는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아까 저희 재한미얀마청년연대에서 함께 미얀마 내에서 지금 무장비 상태로 또 시민군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경찰이랑 지금 맞서고 있는. 시민군을 위해서 무장비 상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방패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걸 가져와서.. 이게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시민군들을 위해 위에 보면 안전모라든가 안경 또는 방패 또 기타 등등 필요한 물품들이 되게 아주 아주 지금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시민군들을 아주 안전하게 싸울 수 있기 위해 또는 민주주의가 다시 우리가 쟁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이런 측면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저희 재한미얀마청년 포함해서 시민단체랑 지금 같이 함께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미얀마 시민들을 또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함께 응원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함께 동참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앵커]
미얀마 시민들께서 거리시위를 벌이면서 쓰고 계시는 이런 헬멧들이 너무 약해 보여서 말이죠. 과연 총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냐라는 생각도 저도 들었는데 좀 더 강하고 견고하고 안전한 그런 안전모라든지 다양한 보호장비들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군요.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서 강버들 기자가 리포트로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UN안전보장이사회가 미얀마 군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지금 대응이 너무나도 늦고 미약합니다. 거북이를 타고 오는 UN. 미안하다고 눈물을 쏟으면서도 성명만 찍어내는 국제사회. 서운함이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네, 그거에 대해서도 지금 어디 기대할 데가 없잖아요, 미얀마 시민들은, 지금 현재로서는 다 물론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런 거 아까 거북이라는 말도 나온 만큼 되게 뭔가 절차를 밟아야 되는 그런 시스템적인 조직적인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얀마 시민들한테는 일단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만이 있다, 우리한테 우리가 있다'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힘겹게 또는 힘든 나날을 지금 겪고 있고 그다음에는 하나도 굽히지 않고 군부에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미얀마는 1885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됐고 1948년에 독립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군부 쿠데타를 여러 차례 겪었고 지금도 군부정권이 미얀마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하고 굉장히 유사한 역사를 지금 견뎌오고 있습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저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힘내시고 민주와 자유를 위해서 계속해서 맞서주시기 바라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재한미얀마청년연대를 이끌고 있는 웨 노에 씨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웨 노에 흐닌 쏘/ 재한미얀마청년연대 리더: 감사합니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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