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헌재 사실적시 명예훼손 합헌…배드파더스·미투 등 위축 우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

“아이들보다 부모 명예 중시

가해자들은 괴롭히기 위해 고소

권리회복 위한 적시 구분했어야”

오픈넷 “진실을 말해도 형사처벌

현실 도외시한 결정에 유감” 비판


한겨레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누리집 ‘배드파더스’를 비공개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 접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헌재는 아이들의 생존권보다 무책임한 부모들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는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2018년 7월부터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배드파더스 누리집에 공개해 780건이 넘는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했다. 지금도 누리집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 250여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구 대표는 “집 앞에서 시위한다고 양육자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양육비 미지급자도 있다. 헌재 결정으로 피해자들의 양육비 지급 운동이 위축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헌재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배드파더스’ ‘미투 운동’ 등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에 기반한 사회적 공론화가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 대표는 헌재가 악의적 사실 적시와 개인의 자기방어나 권리 회복을 위한 사실 적시를 구분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타인의 개인정보에 대한 악의적 노출과 본인 권리를 위한 호소는 차원이 다르지 않나. 그런데 헌재는 한 잣대로 판단해버렸다”며 “양육비 지급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돈을 안 내놓으면 강제수단이 없다. 집이나 직장에 가서 시위할 수밖에 없는데, 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걸린다. 가해자들은 이기지 못해도 피해자 등을 ‘괴롭히기’ 위해서 고소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성폭력·학교폭력 피해 등을 고발할 때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데, 헌재가 이를 살피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번 헌재 결정 뒤 성명을 통해 “진실을 말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 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헌재의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오픈넷은 이어 “타인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표현 활동은 행위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여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3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을 누리집에 공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구 대표의 항소심 재판은 지난해 9월 잠정 중단됐다. 재판부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헌재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다시 재판이 진행될 텐데 1심 무죄가 뒤집히면 사이트 운영을 못 하게 된다. 지금까지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소만 22번 당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고소가 들어올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sc 기사 보기▶4.7 보궐선거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