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1 (월)

독일, 시리아 내전 '반인류 범죄' 첫 철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문·살해 가담 혐의로 징역 4년6개월
'보편적 사법권' 원칙 적용, 중형 단죄
한국일보

2015년 10월 시리아 난민들이 크로아티아 리곤스 국경지대를 지나고 있다. AP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독일 법원이 시리아 내전 당시 반(反)정부 시위대를 고문ㆍ살해하는 데 가담한 전 정보기관 요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법기관이 11년째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 반인도적 범죄에 철퇴를 내린 건 처음이다. 향후 다른 재판에서도 시리아 정부의 인권 탄압에 책임을 묻는 시금석이 될 거란 기대가 나온다.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독일 법원은 최근 고문 혐의로 기소된 시리아 전 정보요원 이야드 알가립(44)에게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시리아 시위대를 상대로 자행된 ‘인류에 대한 범죄 혐의’에 처음으로 유죄가 인정된 사례다. 반인류 범죄는 전쟁ㆍ평시를 불문하고 민간인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탄압하는 잔혹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중죄로 처벌된다.

시리아에서는 2011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발, 내전으로 번졌다. 시리아 정보국(GID)은 이 과정에서 시위를 폭력 진압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독일 코블렌츠시 검찰은 GID 요원이던 알가립이 최소 30명의 시위대를 체포하고, 이들이 고문받을 것을 알면서도 정보기관에 보냈다고 판단했다. 그의 상관이던 안와르 라슬란(58) 역시 최소 4,000명의 고문에 관여하고 58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라슬란이 강간, 전기충격, 채찍질 등 다양한 수법으로 수감자들을 고문하도록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라슬란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2013년 시리아를 떠난 두 사람은 2018년 독일로 망명,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살다가 2019년 2월 독일 당국에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독일 검찰은 집단 학살 등 중대 범죄는 모든 국가가 사법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는 ‘보편적 사법권’ 원칙을 적용, 이들을 자국 법정에서 단죄하기로 했다. 독일 내 시리아 난민 수십명도 피해 증언에 나섰다.

이번 재판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만행을 전 세계에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BBC는 “두 사람은 국가의 고문기계를 작동하게 하는 ‘톱니바퀴’였다”면서 “아사드 정권의 반인권 범죄를 법으로 심판할 역사적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다른 나라들이 독일의 선례를 따를 가능성도 있다.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의 린 말로프 중동ㆍ북아프리카 부국장은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잔혹 범죄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시리아 정부에 보냈다”고 말했다.

10년간 시리아에선 내전 여파로 수십만명이 죽고 1,0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생겼다. 아사드 정권의 시위대 고문 증언이 속출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를 국제법정에 세우려 했지만 러시아ㆍ중국의 반대로 불발됐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