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정부는 왜 소극적이었나 시민단체와 일부 피해자들이 지난 1994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성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헤이그 재판소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제안을 거부해 사건이 성립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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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의 경우에는 소를 제기하는 주체와 대상 모두 정부여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민간과 달리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사법 기관에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ICJ를 통한 해결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당장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ICJ회부에 응하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일본군 위안소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소 문제를 ICJ에 제소한다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메시지 전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위안소 제도가 전시 성범죄라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는 국제정세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와 관련한 사료, 한일 간 외교조약 등의 복잡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문재연의 외교탐구] 위안부 문제해결이 지난한 이유〉와 〈문재연의 다시, 위안부 문제〉 시리즈 기획물로 다룬 바 있다.
더구나 일본이 ICJ 회부에 응하더라도 피해자에게 판단이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당장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경강심이 높아지고 비판여론에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는 이 기조를 엎을 수 있는 ‘모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ICJ 승소한다면 日 전쟁범죄 책임 명료화…역사교육 강제할 길 열려ICJ제소 최상의 시나리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이 성립하고 그 책임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 받는 것이다. 그러나1965년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개인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임’ 자체에 대해서만 성립해도 성과가 있다는 게 피해자 측 입장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전시 성노예’라 빗댄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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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ICJ제소 추진위를 꾸린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 위안부 제도가 전쟁범죄, 반인도범죄였는지에 대한 판단을 피하기는 어렵다”며 “ICJ의 판단은 국제범죄 여부, 배상, 책임인정과 역사교육 등 비금전적 구제에 대한 권위있는 사법적 판단으로 한일 양국의 국내 여론이 정당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ICJ가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인정한다면,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위안소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가 일본의 배상책임을 해소해주는 사안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전쟁범죄 사실 자체가 인정되면 그동안의 고노·무라야마·고이즈미·아베담화로 불려온 이른바 ‘일본의 도의적 사죄’ 표시는 “반복적으로 사과를 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집어 엎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단 한번도 법적인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대중에게 위안부 문제의 참혹함을 교육해야 할 강제력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ICJ가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전쟁범죄로 판단하면 국내 여론의 저항과 상관없이 일본 정부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역사 교육 및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사회적 책임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이 ICJ에 패소한다고 해도 ‘위안부’ 제도에 관한 자료, 증언 등을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 도쿄 재판 때처럼 방대한 역사 기록으로 영구적으로 남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유엔 “위안부는 전시 성범죄”…그래도 우려가 나오는 이유그런데도 ICJ제소에 정부가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소 제도가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 사법기관으로부터의 판단은 받지 못했지만, 유엔 인권위원회 등 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받았다. 유엔만이 아니라 미국도 위안부가 ‘성노예’와 같았다고 지적하며 일본에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외교부 입장에서는 이미 국제적으로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불법성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성노예가 아니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위안소 문제 자체만 봤을 때 국제법상 ‘성노예’ 및 ‘전시 성폭력’의 범죄구성요건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있다. 정부가 ICJ제소 옵션을 적극 검토하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다.
사실 성노예 범죄를 인정한 ICJ판결은 많지 않다. 국제법상 ‘성노예’는 ‘여성의 명예를 실추’하는 행위에서 나아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노예화’ 측면이 더 입증돼야 한다.
일본 위안소 제도 동원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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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개인의 국제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판례도 마찬가지다. 2003년 ICC는 콩고민주공화국 보고로 지역에서 군부에 의한 대형 성노예 범죄에 대해 최종 상소심 판결에서 무죄판결을 했다. 전심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최종 재판부는 ‘성노예’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ICC에서 ‘성노예’ 혹은 전시 성범죄가 인정된 대표적 사례로는1992년 말 발생한 구유고슬라비아 무력충돌을 일으킨 군인 쿤나라츠의 건이 있다. 재판부는 쿠나라츠가 이끈 군이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화했다고 인정했다. 이때 재판부는 군인들이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후 필요에 따라 팔기도 했다는 점을 근거로 국제법상 ‘성노예’로 정의했다.
ICJ에서 위안소 제도를 전쟁범죄로 인정해도 배상책임 및 일본의 책임이 해소됐는지도 쟁점이다. 피해자들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일본의 법적 배상책임을 해소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이외에도 일본이 ICJ 제소에 불응하거나 독도 문제를 ICJ 안건으로 올려 영토분쟁화할 우려 등 외교적으로도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있다. 한일관계와 국가 면제원칙도 ‘복잡한 변수들’에 포함된다.
‘법적책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 근거는그동안의 사료나 증언은 일본군 위안소 제도가 ‘전시 성범죄’이자 ‘성노예제’를 증명하지 않나. 쟁점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 관여 여부’다.
일본 정부는 위안소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위안부를 직접적으로 모집한 중개업자 혹은 민간업자들, 그리고 일부 군이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거나 속여 동원한 사실은 인정한다. 넓은 의미에서 제도의 ‘강제성’ 자체는 일본 정부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러한 행태를 ‘경고’하고 경찰이 ‘단속’하도록 조치해 전쟁범죄를 주도하거나 야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07년 3월 16일 아베 정권이 각의(국무회의)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없었다’는 답변서를 채택한 점을 주목하자. ‘강제연행’을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띈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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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병무과가 기안해 올린 공문은 ‘위안부 모집이 유괴나 납치를 동반한 질서가 없는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으니 파견군에서 통제해 헌병과 경찰당국이 단속하도록 하라’고 밝히고 있다. 이 공문은 조선이나 대만처럼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이 공문을 근거로 위안소 제도 자체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해당 문서를 포함한 방위성 및 내무성 자료들을 되레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및 납치’를 단속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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