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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경비원 몽둥이 폭행…끊이지 않는 입주민 갑질, 막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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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쫓아가 나무 몽둥이로 폭행…전치 3주 부상 입어

입주민, 과거부터 경비원 갑질로 세 차례 신고 당해

전문가 "단기계약 등 노동 구조 개선 필요"

아시아경제

지난 20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근무 중인 경비원을 나무 몽둥이로 폭행하는 등 경비원을 향한 갑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경비원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나무 몽둥이로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경비원 갑질 논란'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반복되는 갑질 행태에도 이에 대응하기 어려운 경비원의 취약한 고용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는 경비원들에 대한 단기 계약을 막는 등의 노동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근무 중이던 경비원을 집에 불러 나무 몽둥이로 폭행한 혐의(특수폭행)로 60대 남성 A씨가 22일 경찰에 입건됐다. A씨는 지난 20일 오전 6시께 만취 상태로 경비원을 불러 나무 몽둥이를 휘둘러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놀라 도망치는 경비원을 쫓아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은 A씨에게 머리와 어깨 등을 맞아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과거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2017년 두 차례, 2019년 한 차례 등 총 3번에 걸쳐 경비원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신고당했다.


그러나 당시 피해 경비원들의 선처로 해당 사건은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 폭행 혐의의 경우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다.


경찰은 현재 해당 아파트 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과 주민들을 상대로 추가 피해가 있는지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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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을 추모하기 위해 주민들이 고인이 생전 생전에 근무하던 경비 초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모여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11일 촬영된 분향소 앞에 모여든 주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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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을 향한 갑질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갑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 씨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경비원 등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사항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달 5일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각 시·도지사는 오는 4월5일까지 공동주택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 신고 방법, 피해자 보호조치, 신고를 이유로 해고 당하는 등 불이익 금지 내용을 담은 관리규약 준칙을 정해야 한다. 또 개별 공동주택 단지의 입주자대표회의는 5월6일까지 이 준칙을 바탕으로 관리규약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비원 갑질 금지법' 시행에도 경비원들에 대한 입주민들의 갑질 행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경기 김포시에서는 30대 남성 B씨가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해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달 11일 아파트에 등록되지 않은 지인의 차량을 경비원들이 막았다는 이유로 경비원 C씨와 D씨를 폭행했다. B씨는 이 과정에서 경비원들에게 침을 뱉은 뒤 의자를 경비실 창문에 던지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원들은 B씨의 폭행으로 갈비뼈에 손상을 입고 코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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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 중인 경비원 모습./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경비원들을 향한 갑질 행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갑질을 당하고도 말할 수 없는 기간제 계약 등의 취약한 고용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9년 발표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경비원 3388명 중 94.1%가 '1년 이하' 계약을 맺고 있었다. 3개월짜리 초단기로 계약한다는 응답도 21.7%에 달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고용한 지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55세 이상의 노동자는 고령자란 이유로 2년을 일해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다 보니 평균 연령이 60~70대인 경비원들의 경우, 단기 계약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데다 일자리를 쉽게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갑질을 겪고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경비원들에 대한 단기 계약을 막는 등 노동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두섭 변호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대표)는 YTN '열린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전체 경비노동자의 90% 이상이 이른바 간접고용 형태로 되어 있다"며 "사용자는 입주민들의 대표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라고 할 수 있고, 경비 노동자들은 대체로 중간에 있는 업체에 고용이 되어있다. 이렇다 보니, 경비노동자들이 (갑질을 겪어도)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잘못했다가 업체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해고될 수도 있고,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비원의 경우 길어도 1년에 한 번씩 계약 갱신을 해야 고용 유지가 되는 구조이다. 항상 잘릴 위험에 있다는 것"이라며 "각 지자체에서 3개월 등 단기계약을 못 하게 한다든지, 입주자 대표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지자체에서 관리를 강화하는 등 고용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정부는 경비원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제도 개선 방안'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아파트 경비원과 같이 경비 업무를 주로 하는 '감시적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당 방안에는 근로자의 휴게시간 보장, 분리수거·주차·청소·택배 보관 등의 부수 업무에 대한 근로기준법 근로시간 적용, 월급을 줄이려고 일부러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의 편법 운영에 대한 감시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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