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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남 짓밟고 승승장구 유명인 아웃!…'학폭' 미투 봇물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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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연예인·경찰 등 '가해자' 소환

정의에 민감한 'MZ세대' 여론심판 주도

뉴스1

학교 폭력을 인정한 여자프로배구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에게 15일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사진은 1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지하철 역에 설치된 흥국생명 배구단의 광고. 2021.2.1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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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저는 그때 그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잘 살고 있어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폭력(학폭) 피해자들은 이 같은 심정을 토로하며 피해 사실을 폭로한다.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 등 스포츠 스타만이 가해자로 지목된 게 아니다. 연예인은 물론 경찰까지 최근 학폭 가해 당사자로 밝혀져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가해자가 잘 살고 있어 참을 수 없었다'는 대목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시민들이었다. "학폭 가해자는 스포츠 스타로서, 연예인으로서, 공직자로서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상 여론의 심판이 이뤄져 당사자 대부분이 활동을 중단했다.

사회학·심리학 전문가들은 "유명 인사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Me too·나도 당했다)에서 이미 나타난 경향"이라며 "법 집행기관을 비롯한 정부 기관의 대응을 불신하는 시민들이 뒤늦게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직접 심판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면서도 "과도해선 안 된다"는 우려감도 나타났다.

학폭 논란으로 활동이 중단된 스포츠 선수는 여성 배구 최고의 스타였던 이재영·이다영씨, 남성 배구 선수 송명근·심경근이다. 이들 모두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됐고 자의든 타의든 한동안 경기 출전이 어렵게 됐다.

연예인으로는 TV조선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2'에서 출연해 주목받았던 가수 진달래(본명 김은지)가 있다. 진달래는 피해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폭 의혹을 제기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31일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미스트롯2'에서 하차했다. 인기 밴드 '잔나비'의 멤버 유영현씨를 비롯해 학폭 논란에 가로막혀 사실상 강제 은퇴당한 연예인은 상당수다.

학폭 가해자가 경찰이 된 사연도 최근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누리꾼은 지난 15일 '학폭 가해자가 경찰하고 있네요…'란 제목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작성자에 따르면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한 뒤 주먹이 아프다며 입으로 '호~' 해달라고 하고 태권도 도장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하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시민들은 연이은 학폭 논란에 분노하며 비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란에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공론화해야 한다" "퇴출해야 한다" "학폭 미투가 벌어지는 것" "이 사태를 보고 학폭이 줄었으면 좋겠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본인 눈에 피눈물 난다"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공직자에게 공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시민들이 학폭에 격렬하게 비판하는 흐름을 그것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시민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의사를 직접 표현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것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켜 대안을 이끌어 내는 문화가 밀레니얼이나 Z세대같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영향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젊은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정의"라며 "많은 갈등과 논란의 이면에 있는 '정의'가 무엇인지 집단들의 정의도 규정된 상황에서 학폭처럼 이른바 '팩트'가 명백한 경우 응징의 정의가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9년 미투 운동에서 나타났듯 과거에 숨은 정의를 찾으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상"이라고 짚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법 집행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종의 시민 재판이 혐오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 집행기관과 교육 당국의 대응에 대한 불신이 시민들의 집단 반응에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 개인을 겨냥해 혐오 감정을 표출하는 인터넷의 어두운 부분도 곳곳에서 발견돼 우려된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가해 학생뿐 아니라 그것을 '쉬쉬'하며 용인한 학교 측과 학부모, 승리 지상주의에 휩싸인 학원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화도 학폭 원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결국 구조적인 부분을 짚어야 학폭을 근절할 수 있을 텐데 시민들의 집단 움직임이 과도해지면 합리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게 된다"고 꼬집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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