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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군 3차례 쿠데타, 결정적 국면마다 민주화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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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네 윈 쿠데타 26년 집권

88년 신군부 등장 8888항쟁 짓밟아

수치 문민정부도 군부가 무너뜨려


한겨레

1988년 8월27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의 연설을 듣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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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현대사는 강력한 정치 주체로서의 군부와 군에 대한 도전, 그리고 좌절로 정리된다. 군부는 미얀마가 역사적 기로에 설 때마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군부의 권위주의 통치 70여년의 결과 미얀마는 1인당 국내총생산 1300달러의 최빈국, 수십 만명의 소수민족을 처벌하고 쫓아낸 인권침해국으로 남았다.

1948년 1월4일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비슷한 시기 독립한 다른 나라들처럼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공산당 등 정치 엘리트들의 투쟁과 독립을 요구하는 소수 민족들의 무장 투쟁이 계속됐다. 이런 혼란을 틈타 1962년 3월 네 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우 누 총리를 제거하고 자신을 포함해 17명으로 혁명평의회를 꾸린다. 이들은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부패, 외국 자본의 침투 등을 쿠데타 이유로 들었다. 네 윈은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을 바탕으로 버마족 우선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했고 소수민족을 탄압했다. 그의 집권은 이후 1988년까지 26년 동안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네 윈 보다 10개월 앞선 1961년 5월16일, 미얀마에서 약 3000㎞ 떨어진 한국에서 육군 소장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네 윈과 박정희는 닮은꼴 정치인으로 꼽힌다.

1988년 미얀마는 3월 ‘양곤의 봄’, 8월 ‘8888 항쟁’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오랜 군부 통치에 대한 실망감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뒤섞였고, 독립영웅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치가 구심점으로 등장했다. 그해 7월 네 윈 의장이 사퇴하면서 투쟁이 절정으로 향했지만, 이때 다시 군부가 등장한다.

9월18일 국방장관 소우 마웅이 쿠데타를 일으켜, 8888 항쟁을 무력으로 짓밟는다. 약 3천여명이 숨지고 1만여 명이 실종됐다. 이듬해 7월에는 수치를 집에 가뒀다. 소우 마웅의 쿠데타는 이전 체제에 대한 거부가 아닌, 이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한 ‘친위 쿠데타’였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은 논문을 통해 “군부의 2차 정치개입(쿠데타)은 네 윈 정권 26년간 군부가 향유해 온 권력적 이익 동기를 옹호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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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의 의회로 향하는 도로를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키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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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 마웅은 민간 권력 이양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수치가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의석 80%를 확보하며 압승했지만, 군부는 총선 결과를 무효화했다. 1992년 군부 2인자 탄 슈웨가 정권을 잡고 2011년까지 자리를 지킨다.

2007년 기름값 인상을 계기로 전국적인 반정부 투쟁이 벌어진다. 불교국 미얀마에서 특수 존재인 승려들도 군부에 맞섰고 시민들이 투쟁에 나섰다. 30여명이 숨지는 등 피로 얼룩졌지만, 미얀마 군부는 이듬해 자체적인 민주화 일정을 내놓는 등 후퇴하는 태도를 보였다. 군부는 총선 실시 등을 허용했지만, 헌법을 바꿔 국회 의석의 25%를 군이 차지하고, 내무·국방·경비 등 치안·안보 관련 핵심 부서를 확보하는 조처를 취했다. ‘민주화 상징’인 수치를 겨냥해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게 하는 조항도 헌법에 포함했다. 자신들이 허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권력을 민간에 넘긴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2010년 총선을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이 보이콧해 사실상 군부가 정권을 유지했다. 군부는 21년만에 수치의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하지만 2015년 11월 총선과 2020년 11월 총선에서는 선출직 의석의 80% 이상을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이 가져갔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지지율이 3%포인트가량 더 높아졌다. 5년을 지켜본 군부에 비상신호가 켜졌다. 두달 여 뒤, 미얀마 새 의회 출범일인 지난 1일 새벽 군부는 세번째 쿠데타를 감행해 잠시 민간에 넘겼던 권력을 빼앗아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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