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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초유의 공매도 전쟁

동학개미 '공매도 전쟁' 선포에도 '한국판 게임스톱 대첩'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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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비디오게임 소매 체인인 게임스톱 주가가 지난달 27일 134.8% 폭등했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20배 뛰었다. 공매도 세력인 헤지펀드에 맞선 '미국 불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 주식을 매수해서다. '게임스톱 대첩'에서 패한 헤지펀드들은 135억 달러(약 15조1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2.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1일 "국내에서도 반(反) 공매도 운동을 펼치겠다"며 "대표적 공매도 피해 기업인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 주주연대가 연합해 공매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셀트리온 주가는 14.5%, 에이치엘비는 7.2%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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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가 1일 서울 세종로에서 공매도 반대 운동을 위해 '공매도 폐지', '금융위원회 해체' 등의 문구를 부착한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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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으론 한국판 게임스톱 가능"



게임스톱발(發) 공매도 전쟁이 국내에서도 재현될 조짐이다.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저항'이 점점 조직화하면서다. 한투연이 지목한 셀트리온을 시작으로 공매도 비중이 큰 두산인프라코어 등으로 종목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셀트리온 등이 '한국판 게임스톱'이 될지, 개인의 집단 주식 매수로 공매도 세력의 손실을 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표면적으로 '한국판 게임스톱 대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의 자금력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조직력이 기관 투자가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만큼 국내판 게임스톱 현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스톱 사태 때처럼 공매도 세력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사들이는 '쇼트 스퀴즈(공매도 쥐어짜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기관 등이 대차를 통해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하는데, 해당 종목 주가가 오르면 상당한 압박을 받기 때문에 쇼트 스퀴즈 같은 장치는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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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잔고 비율 높은 종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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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 어려워…가격제한폭 규정 탓"



그럼에도 게임스톱과 같은 극적인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이유는 크게 5가지다. 첫째는 주가 등락 폭 규제다. 미국은 가격제한폭 규정이 따로 없다. 하루에 주가가 100% 이상 치솟기도 한다. 반면에 국내는 위아래 30%로 묶여 있다. 공매도는 주가가 오를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인데, 국내에선 주가 상승 폭이 제한된 만큼 개인이 공매도 세력에 큰 타격을 주기 어렵다.

국내 종목의 경우 공매도 잔고 비중이 작은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게임스톱의 유통주식 수 대비 공매도 비율(공매도 잔고 비율)은 100%를 웃돈다. 게다가 게임스톱의 경우 유통주식이 적은 탓에 약간의 거래만 이뤄져도 주가가 급등락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마저도 대부분 빌려서 거래가 이뤄졌다.

반면 한투연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힘을 싣기로 한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의 공매도 잔고 비율은 각각 4.56%, 6.52% 정도다. 주주들이 9주, 99주 단위로 주식을 사들이며 '두인스톱' 운동 중인 두산인프로코어도 5.04% 수준이다. 강대석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게임스톱의 공매도 잔고 비중은 최대 148%까지 올라갔지만, 국내의 경우 대개 10% 미만이라 개인의 매수 전략이 먹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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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넘는 게임스톱의 공매도 잔고 비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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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국내 주식시장의 특수한 환경도 '한국판 게임스톱' 현실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의 공매도 제한이 1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어 쇼트 스퀴즈를 유발할 투기적 공매도 규모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공매도 세력이 주로 주식 롱숏 전략을 쓴다는 점도 여기에 힘을 싣는다. 롱숏은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종목을 사고, 내릴 것 같은 종목을 공매도해 차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기관 등이 헤지(위험 회피)를 위해 선물을 사면 현물을 팔기 때문에 굳이 쇼트 스퀴즈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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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떨어진 국내 증시 공매도 잔고 비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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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종목, 공매도 잔고 비중 작아



네 번째로는 미국보다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을 갚는(상환) 기간이 길다. 국내의 공매도 상환 기간은 통상 3개월이고, 주식을 빌려준 기관과 협의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미국은 빌려준 기관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이보다 짧은 편이다. 이효섭 실장은 "빌린 주식을 갚는 기간이 길면 개인이 공매도 세력을 압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거래소의 주가 과열 '브레이크' 장치도 '한국판 게임스톱 사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거래소는 주가 급등이 심하면 단기 과열 종목으로 지정해 '단일가 매매' 방식을 적용한다. 투자자들이 낸 매수·매도 호가를 30분 단위로 모아 하나의 가격으로 매매되는 방식으로, 주가 폭등을 완화한다.

이런 안전판에도 '한국판 게임스톱' 운동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는 나온다. 서상영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공매도 반대 운동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투자자들이 팔고 나갈 경우 뒤늦게 들어간 개인의 손실이 커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미들이 인위적으로 특정 종목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만큼 시세조종 논란도 빚어질 수 있다.

정부도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일 "미국 증시에서 게임스톱 등 일부 종목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는 시장 참가자들의 군집 행동이 시장의 변동성을 높인 대표 사례"라며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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