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트럼프 옆자리' 머스크의 자율주행, 전기차시장 '게임 체인저' 될수 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전기차로의 전환이 캐즘(Chasm)에 빠져 있다는 점, 중국 전기차업체를 향해 관세를 올리며 미국도 유럽도 무역전쟁에 나섰다는 얘기를 몇 차례에 걸쳐 적은 바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 중국 전기차 관세 반대시위 나선 프랑스 꼬냑 생산자들, 왜? / 중국산 전기차 콕 찍어 관세장벽 설치한 EU, 다음은 현기차? / 87년만에 독일 공장 폐쇄 언급한 폭스바겐, 이유는 '전기차 시장 침체'?).

그 사이 미국 정치판에 트럼프가 다시 등장했는데, 당선되기 전부터 트럼프는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중단', '배출가스 규제 완화' 등 전기차 전환에 노골적인 반대 공약을 내세웠다.

전기차 캐즘 극복할 게임 체인저

돌아온 트럼프의 옆에는 EV(전기차, Electric Vehicle) 분야 세계 최강자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서 있다. 2030년까지 무려 2000만 대의 전기차 판매량을 달성하겠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던 그가 이 계획을 올초에 이미 취소한 걸 감안하면 이런 변신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프레시안

▲ 지난 11월 19일 화요일 텍사스주 보카치카에서 열린 스페이스X 스타십 로켓의 여섯 번째 시험 비행 발사장에서 만난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 얘기는 좀 뒤로 제쳐놓고 전기차 캐즘 얘기를 좀 더 이어가 보자. 새로운 기술에 입각한 신제품이 시장 주류로 오르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캐즘, 이걸 넘지 못하고 영원히 시장에서 사라지는 제품들도 있지만 캐즘을 극복하는 경우 대부분 게임 체인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의 초기 시장은 PDA 폰이었지만 얼리 어답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시장 이후 좀처럼 캐즘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캐즘을 극복하게 만들어준 게임 체인저는 아이폰(i-Phone)의 등장이었다.

중국 업체가 선택한 후보 : 저가형 EV

그럼 전기차 캐즘을 넘게 해줄 게임 체인저는 무엇일까? 물론 아직 정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게 있었다면 캐즘 따위 금방 넘어서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여러 업체들이 추진하는 후보군은 존재한다.

사실 캐즘에 빠진 이유를 살펴보면 후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 △아직은 많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충전 시스템 △배터리 화재 등 안전 이슈 △1회 충전시 주행거리 △배터리·모터 원자재부터 정밀 반도체까지 아우르는 전기차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망 문제가 캐즘의 핵심 이유였으니 게임 체인저라면 이들 문제 중 하나 이상은 해결해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중국 업체들은 이 중에서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 문제 해결을 위해 저가형 전기차를 후보로 선택했다. 한국 시장에 아직 중국 전기차가 많이 풀린 게 아니라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싼 가격에 전기차를 공급한다는 걸까?

2000만~3000만 원대에서 벌어지는 경쟁

중국업체들이 미국·유럽의 무역장벽을 피해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기 시작한 동남아 시장, 그중에서도 전기차 점유율이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베트남 시장에서 중국 업체를 비롯한 경쟁업체들이 벌이는 저가형 전기차 전쟁의 양상을 살펴보자.

프레시안

▲ 베트남 시장의 전기차 가격.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 시장 최강자는 토종 전기차업체인 빈패스트(VinFast)로, 전기차 시작가격이 3억 2200만 동(1만 2765달러) 수준이며 한국 돈으로 따지면 1700만 원에도 못 미친다. 동남아 전기차시장 최강자인 BYD가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시작가격이 2만 6000달러로 한화 30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빈패스트의 경우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어 판매하는 차량이지만, BYD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어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차량, 즉 선적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업체들은 어떨까?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생산되는 캐스퍼 일렉트릭의 시작가격이 3100만원 대로 달러 환산가격 2만 3000달러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빈패스트와 BYD는 유사한 가격대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제공되는 수준인데, 한국의 경우 저가형 전기차 포트폴리오가 결코 넓다고 볼 수 없다.

너도 나도 '엔트리 모델'이 뛰어들기 시작

"전기차가 자동차시장의 100% 또는 50%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저렴한) 엔트리 모델이 필요하다. (If you want E.V.s to get to 100 percent or even 50 percent of the market, there have to be affordable E.V.s," she said. "You've got to provide entry models in that space.)"

2년 전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했던 지엠(GM)의 CEO 메리 바라의 얘기다. 유럽과 미국의 글로벌 자동차업체들 역시 저가형 EV가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 면밀한 검토를 해왔다. 특히 팬데믹 기간 엄청나게 치솟은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미국보다 유럽 메이커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실 조금만 돌아보면 저가형 EV는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마이 카(My Car)' 시대를 열어준 건 중대형차가 아니라 국민차 티코를 비롯한 경차와 소형차 아니었던가. 국민 모두가 저렴한 가격에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다면, 다음 차를 살 때엔 더 큰 중대형차를 살 테니 말이다.

팬데믹 기간 전기차 열풍이 시작되긴 했지만, 활성화된 시장은 SUV를 비롯한 프리미엄 EV 부문이었다. 그래서 이름 있는 업체들 모두 엔트리 모델, 즉 젊은 층과 여성층의 생애 첫 차가 될 저가형 EV 개발과 출시 계획을 앞다투어 발표하게 된다(아래 표).

프레시안

▲ 세계 각국 완성차업체의 전기차 가격.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따라잡다 숨이 차버린 유럽·미국 업체들

대부분의 업체들이 시작가격 2만5000~3만 달러에서 대략 2026년 경부터 출시를 목표로 경쟁을 하겠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야심찬 계획 발표와 달리 이런 차량들을 실제 개발하고 출시하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윤이 남지 않는 전기차인데, 당분간 저가형 EV라면 적자를 보고 파는 차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팬데믹 기간처럼 전기차 붐이 일어나는 시기가 아니라 캐즘에 빠져 전기차 전환에 빨간 불이 켜진 시점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보여주는 저가형 EV의 가격대, 그 차량들이 보여주는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유럽·미국 업체들 입장에서는 '넘사벽'에 가까웠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느니 차라리 무역장벽을 높여서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는 게 훨씬 쉬운 길처럼 보였다.

결국 관세 인상을 비롯한 무역전쟁이 시작되었고, EV 시장을 희생시켜서라도 미국·유럽의 자본을 살리는 길이 선택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스텔란티스의 시트로앵 브랜드에서 출시된 eC3를 제외하면 저가형 EV 출시 일정은 계속 뒤로 늦춰지고 있다.

저가형 대신 자율주행 선택한 일론 머스크

"기본적으로 2만 5000달러 (저가형) 모델은 답이 아니며 어리석은 대안 같다. (Basically, I think having a regular $25K model is pointless. It would be silly.)"

지난 10월, 3분기 실적발표에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투자자들 상대로 내뱉은 얘기이다. 올해 4월 로이터 통신이 테슬라가 저가형 전기차 Model 2 개발을 중단했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로이터>가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며 비난한지 6개월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물론 일론 머스크의 새로운 주장은 한 가지 전제조건을 단 것이기는 하다. 만일 인간이 운전하는(human-driven) 차량이라면 말이 안 된다는 것. 그렇다면 테슬라는 완전 자율주행(Fully self-driven) 차량으로 저가형 전기차를 내어놓겠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글쎄, 일론 머스크는 도널드 트럼프 옆자리에서 저가형 전기차가 아니라 자율주행에 완전히 몰입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IRA법(인플래이션 감축법, Inflation Reduction Act)에 따른 세제 혜택(전기차 구매보조금)을 폐기하자는 트럼프 제안에도 동의를 표했으니 말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EV 시장을 희생시켜서라도 테슬라 자본의 살 길로 선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효과 역시 글쎄…. 지금이야 트럼프 옆에 서 있으니 테슬라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세계 최대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듀엣 무대가 아니라 독무대를 좋아하는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와의 관계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책사 노릇을 했던 스티브 배넌과도 얼마 못 가지 않았던가.

캐즘과 무관한 대안이 답이 될까

게다가 자율주행이라는 대안은 전기차 캐즘을 불러온 이유와도 무관하다. △차량과 배터리 가격 △충전 인프라 △원료 포함 공급망 △1회 완충시 주행거리 등 캐즘을 극복할 대안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것.

아무리 권력자의 곁에서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확 풀어버린다 하더라도, 일론 머스크에게 기회가 열릴 것인지는 미지수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이 부문 최고 수준인 웨이모(Waymo)는 물론이고 2위 그룹인 GM의 크루즈(Cruise)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GM의 크루즈조차 캘리포니아에서 운행 중 곳곳에서 사고를 일으켜 캘리포니아주가 자율주행 택시 면허를 회수한 적이 있다. 현재 GM은 안전운행자를 탑승한 상태에서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라도 '완전 자율주행'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서비스는 현재 웨이모가 유일하다.

물론 <인사이드경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지붕을 뚫을 것 같은 테슬라의 주가만이 진실이라 믿는 분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얘기일지 모른다. 한국 정부 1년 예산인 5000억 달러의 2~3배에 달하는 테슬라 시가총액 아니던가.

EV 캐즘을 극복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 캐즘을 넘어서게 할 게임 체인저가 무엇인지, 미국-유럽-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은 어떤 방향으로 세계경제를 이끌고 갈 것인지 점점 더 불확실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땅을 떠나 치솟은 것은 끝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언젠가는 떨어지는 법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