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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5년 만에 짖밟힌 ‘미얀마의 봄’, 군부 쿠데타 왜 발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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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패배로 입지 좁아지자 ‘권력 분점’ 무너뜨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NLD 압승

군부 “부정선거” 주장…정치 불안

국제사회 우려에 “헌법수호” 약속

하루만에 뒤집고 전격적 쿠데타

‘문민정부-군부’ 권력분점 한계

헌법상 의회의석 25% 군부 지명

“군인들, 민간통치에 인내심 잃어”


한겨레

2015년 12월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아웅산 수치(오른쪽)가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만나서 악수했을 때의 모습. 당시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5년 만에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대승했다. 이후 수치는 국가고문이 되어 미얀마를 이끌었지만 1일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네피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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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1일 재발한 군부 쿠데타는 이중권력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 의해 보장받은 군부의 특권적 권력과 아웅산 수치 주도의 선출 권력 사이의 봉합이 더 이상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치가 이끄는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전체 선출직 의석의 83%, 전체 의석의 62%를 확보하는 등 대승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상원의 224석 중 138석, 하원 440석 중 258석을 획득했다. 2015년 총선 때 전체 선출직의 80%, 전체 의석의 59%를 확보한 것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반면 군부의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은 상원에서 7석, 하원에서 26석을 얻는 데 그치며, 2015년 총선 때보다도 저조했다. 의회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가 지명하도록 한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크게 줄고, 행정부 구성에서도 군부 입김이 줄어들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총선 때 미얀마 내 소수민족 거주 지역 상당수에서 치안 불안 등을 이유로 투표소가 열리지 않아, 로힝야족을 포함한 소수민족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아왔다. 군부는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약 7천건의 사례를 제소하기도 했다. 특히 군부의 선거부정 항의는 최근까지 심각한 정정 불안을 유발하고, 쿠데타 우려를 증폭시켜왔다.

군부의 압박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지난 26일 군 대변인 조 민 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도 역시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쿠데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이 이미 선거 때에 “부정직과 불공정”을 지적했다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하루 뒤인 27일에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특정 상황에서는 헌법이 폐지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연방단결발전당 지지자들이 29일 수도 네피도에서 군부의 요구를 지지하는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군부의 움직임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명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9일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 ‘심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 17개 미얀마 주재 각국 대사관도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2월1일 평화로운 의회 개회 및 대통령 선출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군부는 지난 30일 공식 성명을 내어 “군은 미얀마 헌법을 보호하고 준수할 것이며, 법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하루 만에 전격 쿠데타를 감행했다.

군부는 부정선거를 쿠데타 이유로 들지만, 쿠데타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선거 전부터 제기돼왔다. 부정선거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군부가 잠시 나눴던 권력을 되찾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수치의 국민적 인기가 지속되고, 그의 당이 다시 선거에서 대승하면서 군인들이 스스로 고안한 민간 통치에 대해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미얀마는 2016년 이후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과 군부 사이의 이중권력 체제로 움직여왔다. 현재의 신군부는 1988년 네 윈 군사정부가 민주화 운동으로 무너지자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세력이다. 이들은 국내외의 압력에 2015년에 민주주의민족동맹도 참여한 자유 총선을 실시했고, 민주주의민족동맹이 대승을 거뒀다. 이듬해인 2016년 수치 국가고문이 사실상 이끄는 정부가 출범하며 이중권력 체제가 시작됐지만, 5년만에 파탄을 맞았다.

최현준 정의길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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