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밤, 경북 포항시 북구에 있는 한 도로. 길을 걷던 강아지가 별안간 공중으로 붕 하고 솟구쳤다. 왼편에 있던 견주가 가슴줄을 잡고 돌린 거였다. 강아지는 속수무책으로 360도 돌 수밖에 없었다. 견주는 강아지가 정신차릴 새도 없이 그렇게 세 번을 연달아 빙빙 돌렸다.
행인이 이 영상을 찍어 알렸고, 공분이 일었다. 마치 쥐불놀이를 연상케 해 '쥐불놀이 학대'라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20대 여성으로 알려진 견주는 학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문제는 쥐불놀이 학대를 당한 강아지가 같은 견주에게 5일만에 다시 되돌아갔단 것.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학대 당한 동물이, 다시 학대자 손에 넘어가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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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동물보호법…"학대당한 동물, 소유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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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이들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겠으나, 이게 다 동물보호법에 명시돼 있는 내용이다.
동물보호법 제18조엔 '학대 당한 동물을 소유자가 반환을 요구할 땐 반환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학대 받은 동물을 3일 이상 격리하는 건 가능하지만(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4조), 소유권을 뺏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쥐불놀이를 당한 강아지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 동물보호 업무를 하는 포항시 관계자는 "5일 정도 개 상태를 보기 위해 격리했는데, 주인이 보호 기간이 끝났으니 돌려달라고 했다"며 "강제로 소유권을 뺏을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쥐불놀이 학대를 당했던 강아지./사진=동물권혁명 캣치독팀 |
반환 요구와 함께 견주는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서 보호한 것에 대한 비용도 납부했다.
해당 강아지는 재학대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사후 관리 중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난 18일에 확인했는데 강아지가 활발했다"며 "견주가 직접 잘 키우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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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두 마리 죽이고, 새끼고양이 또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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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학대자에게 동물들이 재학대 당할 수 있단 점이다.
2019년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동네. 이 곳엔 '시컴스'라 불리는 검고 흰 털이 어우러진 고양이가 살았다. 츄르를 좋아하고 애교가 많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사랑하는 고양이였다.
시컴스를 새벽에 패대기쳐 죽인 학대자./사진=동물자유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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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새벽, 동네 주민 중 한 명이 시컴스를 수차례 벽과 바닥에 패대기쳐 죽였다. 경찰 조사 결과 50대 남성인 학대자는 또 다른 고양이도 죽인 혐의를 받았다. 분양 받은 고양이가 먹이를 먹지 않는단 이유로 주먹으로 때려 죽인 거였다.
고양이 두 마리를 죽인 범인은 또 다른 새끼 고양이를 2만원에 분양 받은 상태였다. 다행히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했다. 그러나 다시 분양 받아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4월엔 목줄에 개를 매어 난간 밖에 매다는 학대자도 있었다. 그는 이미 같은 개를 학대해 벌금 400만원의 형을 선고 받았었는데, 또 다시 학대한 거였다. 이에 앞서 2017년엔 서울 강동구 성내동서 개를 굶겨 죽인 학대자가, 또 다른 개들을 굶겨 죽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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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계속 '개정안' 발의됐으나…통과는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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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국회에서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계속돼 왔다. 19대 국회에선 문정림·심상정·진선미 의원이, 20대 국회에선 한정애·표창원 의원이 학대자의 동물 소유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단 한 번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에 대한 큰 반대나 쟁점은 없었는데, 국회가 정상화되지 못한 탓에 상임위나 각 정당서 미는 법안이 아닌 경우 처리되지 못하고 밀렸다"고 설명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검토보고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학대자의 소유권 제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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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현재 국회에서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재차 관련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상임위원회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검토보고서엔 "동물에 대한 소유권의 상실·제한은,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국민 재산권 제한에 해당할 소지가 없는지 사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학대자의 동물 소유 제한이 재산권 침해 우려가 있단 의견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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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재산권' 고려 안 해서, 학대자 소유권 제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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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소장은 "미국·영국 등 해외에선 동물학대에 대한 제도에 '학대자의 동물소유권 제한'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는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도외시해 이런 규정이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영국은 동물학대 유죄 판결을 받은 학대자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동물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게끔 법에 명시돼 있다. 미국도 학대자의 동물을 몰수할 수 있도록 했고, 이후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제한하는 법이 마련돼 있다.
스위스도 동물학대 처벌을 받았거나 기를 자격이 없는 이가 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동물과 함께 일하는 것까지 금지한다. 독일 역시 동물학대 처벌을 받은 이에 대해 최소 1~5년, 길게는 무기한으로 동물 소유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고양이 두 마리를 죽였던 학대자의 집엔, 이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더 있었다./사진=동물자유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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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국가가 학대자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건 동물학대는 예방이 가장 중요해서다. 이 소장은 "동물학대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이뤄지고, 학대당한 동물이 증언·신고를 할 수 없다"며 "그러니 학대자의 동물 소유권을 박탈하는 건 상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특히 "동물학대 행위는 학대자의 정신적인 문제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쉽사리 고치기 어렵다"며 "그래서 한 번 학대한 사람이 충분히 또 학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학대자가 자비로 정신 건강 치료를 받도록 법에 명시해두기도 했다.
학대자의 소유권을 제한하고 분리할 경우, 개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쥐불놀이 학대 강아지를 보호했던 포항시 관계자는 "시 동물보호센터에 격리했는데, 공간이 여의치 않고 아플 때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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