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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때리는 부모에 다시 돌려보내진 아이…조폭 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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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편집자주] 16개월 여아가 부모에게 학대 당하다 숨을 거뒀다. 학대 정황에 조금만 더 민감했어도, 분리만 됐어도 아이는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삶이 행복했을까. 학대 사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그렇다고 확답하지 못한다. 피해 아동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다각적으로 점검해본다.

[MT리포트-학대아동을 위한 곳은 없다]①아동 수용할 기관 없어 원가정으로… 재학대 노출

#1. A군(15)은 한동안 인근 조직폭력배의 집에서 숙식하며 학교에 다녔다. "너는 세상 밖에 나와서는 안 됐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부모가 싫어서 집을 나왔다. A군은 수년 전 아동학대 피해자로 신고돼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경험이 있다. 당시 외상 등 학대 정황이 명확했기 때문에 분리 조치가 이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가정으로 돌아왔다. 이후 부모는 물리력을 행사하는 대신 남들에게 티가 안 날 정서적 학대를 가하기 시작했다. 친구 집을 전전하던 A군은 결국 '동네 친한 형'인 조직폭력배 형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2. 초등학생 B양(12)은 아동학대 피해자로 신고가 3번이나 들어간 이력이 있다. 한 번은 영양실조로, 두 번은 부모의 폭력으로 신고를 당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폭력 수위가 전치 4주만큼 심각하지 않다며 긴급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절차상 아동과 부모 모두의 동의서를 받아야 분리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결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나서서 부모를 끈질기게 설득해 분리에 성공했다. 하지만 B양은 1년 후 다시 엄마에게 돌아갔다. 아이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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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 부재는 재학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한 축이다. 피해 아동을 수용할 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분리를 결정하는 조사관들은 신중하게 '응급 아동'만을 분류해 시설로 보내게 된다. 설사 부모로부터 떨어지더라도 시설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이는 '손찌검'하는 부모에게 자발적으로 돌아간다.

1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과 지자체 전담공무원은 조사에 나선다. 조사 결과 긴급 분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아동은 단기보호시설에 입소한다. 주로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지원하는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 기거하게 된다. 전국 쉼터는 76곳이다. 각 쉼터의 수용인원은 7명이다. 2019년 기준 아동학대 사건으로 집계된 3만45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렇다보니 지난해 기준 아동이 분리조치 된 경우는 3669건(12.2%)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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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정도의 단기간만 수용이 가능한 쉼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나와야 한다. 쉼터에서 나온 아이들은 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절반 가량이다. 2019년 기준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퇴소한 아동 전체 654명 중 원가정 복귀한 아동은 300명(45.9%)이었다.

문제는 가해 부모가 있는 원 가정에 복귀한 아이들이 또다시 학대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재학대 사례 3431건 중 부모에 의한 재학대 사례가 3244건(94.5%)으로 월등히 높았다.

전문가들은 친부모 양육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학대 피해아동을 수용할 안전망이 확충돼야 반복되는 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애초에 아이는 부모에게서 자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에 학대 피해아동을 수용할 별개 시설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며 "학대 피해아동들이 장기간에 걸쳐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기관을 확충해야 심각한 재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부회장도 "학대 조사부터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된 한국형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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