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11일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스마트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전일대비 7.5원 오른 1,097.3원에 장을 마감하고 있다. 이날 장초반 3260선까지 치솟았던 코스피지수는 개인의 4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 순매수에도 기관과 외국인의 동반 순매도에 소폭 하락 마감했다. 2021.1.11/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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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6.23과 3096.19 사이.
11일 코스피 지수가 그린 궤적이다. 장 중 170.04포인트를 오르내리며 투자자에게 살 떨리는 하루를 선사했다. 개장 10여분 만에 3200선을 넘어서며 속도를 낸 뒤 개장 1시간 15분 만에 최고치(3266.232)를 찍었다. 개인과 기관의 치열한 공방 속 이날 13시 32분 3096.19까지 밀렸다. 일진일퇴를 주고받으며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12% 하락한 3148.45에 거래를 마쳤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운 시장을 지배한 건 '비이성적 과열'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과도한 주가 급등세에 대한 경고를 던지며 썼던 말이다. 시장을 달군 건 무서운 기세로 증시로 쏠려 드는 개인투자자의 러브콜이다. 천문학적이라고 할 돈을 쏟아부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은 4조4779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코스피가 출범한 1983년 이후 하루 동안 개인투자자가 이 정도로 주식을 사들인 적은 없었다. 기존 최대 기록인 2조 2205억원(지난해 11월 30일)의 약 2배다. 기관(3조7361억원)과 외국인(7193억원)의 대규모 매도에도 동학개미들이 버틴 덕에 전 거래일과 비교한 낙폭은 크지 않았다.
사상 최대 규모 주신 산 동학개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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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4779억원의 돈을 쏟아부은 동학개미의 '편식'은 심했다. 현대차를 3289억원 어치 사들였고, 삼성전자를 1조7394억원어치 쓸어담았다. 이날 삼성전자의 거래대금은 8조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이날 장 중 9만6800원까지 치고 오르면서 '10만 전자' 고지도 넘봤지만 전 거래일보다 2.48% 오른 9만1000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9만 전자' 고지에 안착했다. 이날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609조원에 이르며 시총 600조원도 넘어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특정 종목에 쏠림 현상이 이어져 지수가 급등했지만, 이후 기관이 다른 종목에서 차익 시현에 나선 것”이라며 “최근 급등세가 대형주 내 소수 종목에 집중된 만큼 상승 피로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전체로 보면 주가가 오른 종목은 170개, 내린 종목은 712개로 일부 종목으로 쏠린 '그들만의 리그'란 우려도 나오는 이유다.
연일 가속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높여가는 코스피의 움직임이 과열 국면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비율을 나타내는 ‘버핏지수’의 현재 표준편차를 벗어나 있는 만큼 단기 과열 양상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연료가 너무 활활 타오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8일 67조5474억원에 이른다. 호시탐탐 증시의 상승세에 편승할 시기를 가늠하며 증시 입성을 노리는 투자자도 늘어나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지난 8일 하루 신규 계좌 개설만 5만3270좌에 이른다. 투자자가 몰리며 11일에는 일부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접속 지연 사태까지 빚어졌다. 최근엔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 움직임까지 가세 중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 이전 주식 호황기 때에도 한 달에 신규 유입 예탁금이 5조~6조원이었는데 올해 4일까지 새로 들어온 예탁금 규모가 7조5000억원”이라며 “가계 금융자산 4300조ㆍ예금 1900조와 같은 저금리 속에서 쌓인 잉여 유동성을 바탕으로 최근 개인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롤러코스터 탄 코스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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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된 시장의 움직임이 IT 버블로 가득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시장과 닮은꼴이란 분석도 나온다. 당시 미국 나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한 IT 열풍이 바다 건너 한국으로 넘어오며 시장이 과열됐다. 비이성적 과열이란 경고가 나온 시기다. 이후 거품이 꺼지며 투자자와 시장은 한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학균 센터장은 “최근 개인의 투자 급증은 나만 주식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절박감 속에 이뤄지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투자 악재 요소도 없어 투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IT 버블의 충격이 휩쓸고 간 2000년대 초반과 현재 상황은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격의 개미가 투자하는 분야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용택 센터장은 “IT 버블 당시엔 미래에 대한 기대가치만 있지 실적이 없는 곳에 투자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ㆍ현대차ㆍLG전자 등 기존의 캐시플로(현금흐름)가 있는 가운데 미래 한국 사회 산업을 선도할 미래 기술을 가진 종목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당시보다는 안정성을 확보한 투자라는 말이다.
스마트머니로 진화한 동학개미의 투자 패턴도 변수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튜브와 블로그 등 다양한 정보를 학습할 통로가 많아졌다”며 “이를 통해 보다 똑똑해진 개인 투자자의 성향이 시장에 스마트 머니 양상으로 반영되고 있다”며 “지금도 ITㆍ플랫폼 기업ㆍ바이오 등 신기술 분야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집중하는 움직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언제든 시장을 흔들 재료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짧은 시간 과도한 상승세를 보인 만큼 언제든 출렁일 수 있다. 정용택 센터장은 “2000년대 IT 버블의 종료는 Fed의 금리 인상으로 이뤄졌다”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경제정책과 중국ㆍ북한 등 지정학적 위험도, 2~3월 기업 실적 발표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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