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
남 잘난 것에 시기질투가 심하지 않고 분수도 제법 안다고 생각하는데, 잘난 것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보면 눈꼴이 시다. 겉으로 너그러운 척하지만, 실제로는 소갈딱지가 못난 탓이다. 열다섯 나라에서 온 스무명이 한반으로 1년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학기 초에 스스로 손을 들어 반장이 된 씩씩한 일본 친구가 있었다. 다카코는 일본의 북극 탐험대 출신. 가끔, 친구들을 모아서 자신이 천길 낭떠러지 곁을 걷거나 크레바스에 사다리를 걸고 가로지르는 비디오를 상영했다. 철 지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들고 와서 깨알처럼 작게 나온 자신을 부러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시큰둥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자신이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본 그의 경험을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왜 그렇게 속 좁게 굴었을까? 영국 왕,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부터 즉위, 그리고 그 이후의 궁정사를 담은 드라마 <더 크라운>을 보다가 이유 비슷한 것을 찾았다. 엘리자베스의 남편, 필립은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뉴스에 열광한다. 필립은 달에 발을 디뎠던 2명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과 사령선을 운전했던 마이클 콜린스가 세계 투어의 일환으로 영국에 들렀을 때 만났다. 역사에서는 여왕과 가족들이 함께 만난 기록만 남아 있는데, 드라마에선 필립이 특별히 부탁해서 이들과 따로 만난다. “저 바깥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우선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놀라운 풍경을 만났습니다.” “그런 것 말고, 인간이라는 존재나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럴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프로토콜에 맞게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리스트에 표시를 해야 했죠.” “달을 걸은 다음에 무슨 느낌이었죠?” “돌아와서, 쉴 틈이 겨우 나서 고개를 숙이고 쉬는데 냉각기 소음이 시끄러웠어요.” 영웅들의 평범함에 실망한 필립.
‘돈오’(頓悟)와 같이 한번에 깨닫는 수행법이 없지는 않다고 하지만 한번의 경험으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얻는 것은 누구에게나 드물다. 우리는 영웅들에게 가끔 그들이 질 수 없는 짐을 맘대로 지워놓고 멋대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우주비행사, 토마 페스케가 우주비행사가 되어 국제우주정거장에 오간 일까지 촘촘하게 기록한 만화 <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마리옹 몽테뉴 지음, 하정희 옮김, BH)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주비행사는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고 톰 행크스다.”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나가서 일하는 것은 그의 경력 중 1%에 불과하고, 우주복은 그중에 1%의 시간에 입는다. 나머지 시간은 중력이 없어 공기도 흩어진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데 쓴다. 존 매클레인의 호쾌한 액션을 익히기보다는 포레스트 검프의 끈기가 필요하다. 정교하지만, 부서지면 생명을 잃는 우주선과 우주복의 장치들이 정상적인 작동을 하는 데 온 신경을 다 써야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밟는 데도 감상이 있는데 달에 첫발을 디딘 감상이 없을 수 없겠지만, 우리를 지켜주는 지구를 떠나면 우리는 숨을 쉬는 것에만도 안간힘을 쏟아야 한다.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페스케는 준비를 했다. 항공공학을 공부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우주비행사 모집에 응모했다. 8413명이 시험에 응모했고 서류전형에 붙은 1천명이 시험을 봤다. 가학 성향이 있는 정신공학자들이 “강하게 후려치고, 뉴런을 쥐어짜게 하고, 자기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고, 궁지로 몰아넣는” 시험을 통과했다. 우주정거장에서 여섯달씩 머물러야 하는 요즘 우주비행사들의 근무 여건을 고려해서 이런 사람을 뽑는 절차를 또 밟는다. 상냥하고, 성실하고, 참을성 많고, 일중독자이지만 자기 확신이 있고, 체계적이고,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 마침내 페스케는 6명의 우주비행사 중 한명으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다시 하염없이 기다리고 훈련했다.
필립은 우주비행사들에게 실망했지만, 나는 이제 실망하지 않는다. 내 시큰둥함도 철회한다. 낄낄대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영웅들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노력이 넓힌 지평이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물리적 토대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들은 스스로가 아니라 우리의 세상 보는 눈을 바꾸어준 사람들이다.
만화애호가
※격주에 한번,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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