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추행 고소 사건 수사 종료
피해자 측 "사실관계 밝혀지지 않아"
시민단체 "책임자들은 사죄하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9월28일 서울시청 앞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대응 '서울시 공개 질의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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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은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수사가 5개월만에 종결됐다. 수사가 성추행 의혹을 풀지 못한 채 종료되자, 수사가 미흡하게 진행됐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박 전 시장과 과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혐의 등 고위공직자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31일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박 전 시장이 실종되기 전날인 지난 7월8일 접수된 강제추행·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성추행) 혐의 고소 사건은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 사망에 따라 불기소 의견(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 예정이다.
또한 전·현직 비서실장 등 7명의 강제추행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예정이다.
앞서 성추행 의혹과 측근들의 성추행 방조 의혹 등이 불거졌던 박 전 시장은 지난 7월10일 북악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경찰은 같은 달 16일 '박원순 사건 전담 수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망 경위와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다. 하지만 수사가 시작된 지 약 5개월여 만에 의혹을 풀지 못한 채 종결되자 피해자 측은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289개의 여성단체가 모인 피해자 지원단체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은 29일 입장문을 통해 "경찰의 공소권 없음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며 "누구나 예상한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과 말고, 수사 결과 규명된 사실을 밝혔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은 "모든 영장이 번번이 법원에서 기각돼 기본적인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경찰 발표에는 피고소인들만 존재하며, 피해자는 삭제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를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지지자들의 잘못된 행위에 경종을 울리지 못했고 만연하게 가해지는 2차 가해가 지속되도록 하는데 오히려 기여하는 것 아닌지 우려가 된다"라며 "범죄 혐의와 별개로 피해자가 소명하고자 했던 사실관계조차 경찰이 밝히지 않았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관련,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이 30일 발표한 입장문의 일부 내용이다. 사진=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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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 "이 파고는 넘기 힘들 것 같다"라는 등 성추행 피소를 의식한 듯한 발언을 주변에 여러 차례 한 사실이 30일 밝혀졌다. 언론 보도 내용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지난 7월9일 고한석 전 비서실장과 공관에서 만나 "피해자가 여성단체와 함께 뭘 하려는 것 같다. 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할 예정"이라며 "고발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동행동은 30일 입장문을 통해 "오늘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의 발표로 그동안 제대로 공개되고 정리되고 인정되지 않았던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 동기와 경위가 드러났다"라며 "이로써 피해자가 밝히고자 했던 피해가 현실에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공동행동은 "피해와 피해자의 존재뿐 아니라, 박 전 시장이 스스로 인지하고 인정했던 것에 대해서도 은폐하고 침묵해온 행위, 이 거대한 부정의를 우리는 규탄한다"라며 "책임자들은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행위를 피해자에게 사죄하라. 제도적, 절차적, 법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라"라고 촉구했다.
이어 "7월8일 피해자의 고소 이후 176일이 흐르는 사이에 더욱 침묵, 은폐되었던 거대한 부정의는 끔찍한 2차 피해를 낳고 있다. 이제 처음부터 성폭력 사건에 대한 매뉴얼대로, 지침대로, 제대로 시작하라"라고 강조했다.
오거돈 성폭력 사건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18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 구속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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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이 같은 '권력형 성범죄'의 사례로 꼽히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강제추행, 강제추행 치상, 무고 등 4가지 혐의에 대한 구속 영장이 지난 18일 기각됐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초 집무실에서 직원을 강제 추행하고, 앞선 2018년에는 또 다른 직원을 성추행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부산지법 김경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증거인멸 염려가 크지 않은 점, 피의자가 도주의 염려도 없는 점에 비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오 전 시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6개월 만에 구속영장이 또 기각되자 여성단체 등에서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수사가 미흡하고 피고소인에 대해 관대하다며 질책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전국 290개 여성인권단체로 구성된 '오거돈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법원은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인 오거돈을 일벌백계해 사회에 경종을 울려도 모자랄 판국에 또 풀어줬다"며 "전 부산시장 오거돈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사법부의 이름으로 가해자의 권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기회이며, 국민에 권력형 성폭력의 엄중함을 공표할 계기"라고 지적했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고위직 남성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여성들이 위협당하는 성추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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