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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정치권 보수 진영 통합

신공항 갖고 서로 할퀼때 알아봤다, 영남당 전락한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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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보수정당] ③지역고립





요즘 정치권에선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두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여론조사를 막론하고 야권 잠룡들 중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윤석열의 부상’은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존재를 지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18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그 전주보다 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박스권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22.8%)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43%로 과반에 못 미쳤습니다. 한 마디로 ‘윤석열을 택할지언정, 국민의힘은 아니다’란 겁니다. 왜 이렇게 보수야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일까요. 건전한 정당 정치를 위해선 능력있는 제1야당의 재건이 필수적입니다.

중앙일보는 보수야당이 처한 현실을 ①가치상실 ②세대고립 ③지역고립 ④인재고립 ⑤계급고립의 5개 분야로 나눠 하나씩 짚어봅니다. 이번은 3회 ‘지역고립’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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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인 출신지역 분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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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2008년)→50.3%(2012년)→45.7%(2016년)→66.7%(2020년)

18~21대 총선 때 현 국민의힘 계열인 보수정당의 영남 지역구 당선자 비중이다. 이 기간 영남에서는 50~60석가량을 유지했지만, 전체 지역구 의석수가 137석(2008년)→127석(2012년)→105석(2016년)→84석(2020년)으로 줄어들며 영남 의석 비율이 확 커졌다. 지난 4월 총선에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확보한 지역구 84석 가운데 56석(66.7%)이 영남 지역구였다. 출신지가 영남인 지역구 의원은 58명(69.0%)으로 더 많았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영남 지역구 비율은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영남 지역구 의석 비율도 57.1%(2000년), 60.0%(2004년)로 높았지만, 2008년엔 친박연대(영남 5석)를 포함해도 37.2%에 그쳤다. 이후 출범한 새누리당 때는 50.3%(2012년), 45.7%(2016년)로 50% 안팎을 유지했다. 21대 총선 들어 영남 지역구 의석 비율(66.7%)이 20대 국회 대비 20%포인트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는 수도권 의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역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수도권 의석수는 18대 총선(2008년) 때 8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43명(2012년)→35명(2016년)→16명(2020년)으로 수직 하락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국민의힘 인사는 “과거에는 수도권 의원들이 당 중심의 한 축을 맡았지만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영남 보수파가 당의 유일한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수도권에서의 국민의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지역적 기반이 있는 영남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과잉 대표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역논리·이념색 강화→지역정당화’…악순환 고리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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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국민의힘 지역별 의석 변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지역정당화의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일방적 지지 성향이 강한 영남이 당 내부에서 압도적 주류가 되면 개별 이슈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응성을 떨어뜨린다. 집토끼, 영남의 이해관계에만 과하게 반응해 매몰될 수 있다”(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런 식으로 영남 비중이 급증하면 영남당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국민의힘은 애초 지역정당 성격이 강해 선거에서 이기려면 확장성이 핵심인데, 이념색채가 짙어지며 오히려 지역편중 이미지가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를 ‘영남 딜레마’로 표현한다. 영남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인구·문화·기술 등 모든 게 다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정작 국민의힘은 수도권에 국회의원이 적다. 정당은 지지층 의사를 반영해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데, 지지층의 뜻이 곧 영남 주민의 뜻이라면 그게 곧 지역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표를 끌 만한 정책을 추진해도 이는 기존 지지층의 이해와는 관계가 적다. 이대로라면 ‘수도권이냐. 영남이냐’는 딜레마 상황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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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4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 길을 막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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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투쟁력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것도 영남 지지층이 과대표되는 과정에서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TK(대구·경북)의 한 재선의원은 “지역구에 가면 늘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간곡한 호소와 함께 ‘왜 그렇게밖에 못 싸우냐’는 호소를 듣는 게 일”이라며 “그런 얘기를 듣고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강경투쟁’의 효과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결사 항전에 나섰지만 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법안(선거법·공수처법) 통과 저지에도 실패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대를 때려도 상대가 아프게 때려야 하는데 허공에 주먹질한 꼴 아니냐. 지난해 장외·강경투쟁을 해서 남은 건 지지층을 향해 ‘우리 이렇게 열심히 싸웠다’고 호소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난해 9월 공수처법 저지를 위해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하고, 연말 장외집회에도 적극 나섰지만, 이듬해 4·15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 시절 ‘호남 고립’ 때문에 고전하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호남+충청)을 형성해 지역 프레임을 뚫고 정권을 잡았다. 이후에도 민주당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등 아예 PK(부산·경남) 출신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영남표를 줄기차게 공략했고 이게 대선 승리의 주요 원동력이 됐다. 한 야권 인사는 “현재 국민의힘에선 영남고립을 어떻게 극복할 지에 대해 정교한 전략이나 정치적 상상력이 보이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야당되면서 더욱 지역 이슈에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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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사진 오른쪽)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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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오후 국민의힘 부산시당 회의실에서 하태경, 황보승희, 안병길, 박수영 의원 등이 신공항 관련 외부 인사들과 '부산 가덕도신공항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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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진 의원들이 지역 이슈에 함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정부가 ‘김해신공항’ 사업 관련 재검토 취지의 결론을 내린 뒤,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두고 TK(반대)와 PK(찬성)가 사실상의 내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당시 부산 의원 15명이 ‘부산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발의하자 주호영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던진 이슈에 말려들면 안 된다”며 질책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PK의원 사이에선 “주 원내대표가 자기 지역구(TK) 논리에만 매몰돼있다”는 뒷말이 나왔다. 당 지역구 의석의 66.7%를 차지하는 TK·PK가 내분 양상을 벌인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는 묻혔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내부 갈등 국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가 살벌해 무슨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웠다”고 기억했다.

당 전체의 이슈보다 지역구 사정만 신경 쓰는 사례도 허다하다. 10월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에서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울산 중구, 초선)이 질의시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발언을 끝냈다. 지역 현안인 부산·울산 광역철도 송정역 신설과 관련한 질의에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검토해보겠다”고 답하자 박 의원이 “그러면 거의 된 거로 알고, 시간이 1분20초 남았지만 질의를 마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당 소속인 진선미 국토위원장이 “말이 안 나오네”라고 하는 등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당시 상황을 전해 들은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부동산 문제 때문에 국민들이 난리가 났는데 야당 의원이 주무 장관을 몰아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지역구 민원이나 챙길 때냐”며 한숨을 쉬었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세기 미국에는 남부 농민만을 타깃으로 한 제3당이 있었지만 결국 확장에 실패하고 소멸한 사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특정 지역의 파이가 커지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남 보수의 목소리가 톤 다운되지 않으면 지역정당으로의 더 몰락이 더 심화될 수 있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전국정당으로 회복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수도권을 향한 어필 전략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내부 견제로 융통성 발휘, 집권 놓지 않는 日자민당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래 정권을 빼앗긴 것은 1993년과 2009년 두 차례로, 기간은 합쳐서 5년8개월에 불과하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선 자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이 과반을 확보한만큼, 2009년 패배에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자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중의원 의석 480석 가운데 119석만 확보하며 민주당(308석)에 말 그대로 참패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뒤인 2012년앤 294석을 확보하며 민주당(57석)에서 정권을 탈환, 건재를 과시했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배경에는 특유의 정치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된다. 그 중 자민당 내부에서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우파 빅텐트 성향의 정당인만큼 ‘극우에서 중도까지’ 파벌연합체적 성격이 있어, 국민의힘과 달리 노동·환경 문제 등에 있어 실용적이고 융통성있는 의제 설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 9월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서 나온 경제정책 관련 발언의 종류도 다양했다. “일자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스가 관방장관, 현 총리)는 전통적 논리도 있었지만 “성장 과실의 분배를 생각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기시다 정조회장) “철도 및 도로·정보망이 발달할수록 도쿄 일극 집중이 진행되는 게 이 나라의 구조”(이시바 전 간사장) 등 결이 다른 해법도 다수 언급됐다.

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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