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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주52시간, 조선업에 적용 불가능"…중소 협력사 공멸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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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사 주52시간 비명 ◆

매일경제

24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을 근로자들이 드나들고 있다. 대한민국 수출첨병 역할을 해온 조선업은 내년 주52시간 근무제 적용이라는 태풍을 앞두고 생존의 위기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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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비바람이 쏟아지는 날은 야외 작업이 올스톱됩니다. 그러면 밀린 작업만큼 몰아서 할 수밖에 없는데 주 52시간을 못 박아 놓으면 조선업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지난 19일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 인근에서 만난 조선업 협력업체 인향의 양충생 대표는 직원 300명 미만이 대부분인 협력사들이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받는 데 대해 조선산업 현장에는 현실적으로 적용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었다. 인향은 높이 2m 이상인 곳에서 일명 '족장'으로 불리는 발판과 파이프로 임시 구조물을 설치해 용접·도장 등 작업 활동을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 배 건조 작업을 지원하는 업무인 만큼 주 작업이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수시로 일정을 점검하면서 사전에 임시 구조물을 설치하고 작업 완료 후에는 즉시 제거하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일보다 근무시간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양 대표는 설명했다. 양 대표는 "조선업은 야외 작업이 70% 이상 되기 때문에 우천, 태풍, 혹서기 또는 혹한기에는 부득이하게 일하지 못하고 밀린 공정을 특근이나 잔업으로 만회해야 하는 돌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강조했다.

양 대표는 조선업 협력사가 직면한 어려움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고 주 52시간 적용 유예, 조선업 특별지원업종 및 고용위기지역 연장, 조선업 경영특별안정자금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건의서를 성윤모 산업부 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국내 조선 5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미포조선·삼호조선)의 협력사는 총 470여 개로 종사자만 7만여 명에 이른다. 양 대표는 "국감 이후 조선 5사 협력사 협의회와 정부 관계부처 관계자와 간담회도 열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관련 법안이 심의 중이라는 것과 예산 확보 어려움 등으로 안 된다는 이야기뿐"이라며 "당장 내년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데 보완책 하나도 마련해 놓지 않고 있으니, 이러다가 내년에 조선업이 망해 폐업 대란이 일어나면 어떡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와 관련해 24일 부산에서 조선 5사 사내 협력사 연합회는 결의문을 내고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유예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정부에서 명쾌한 답변이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조선 5사에 종사하는 근로자 전체의 이름으로 주52시간 제도 유예 청원과 결의문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 5사 사내 협력사 연합회는 이달 말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릴 계획이다.

국내 조선산업의 뿌리인 중견·중소 협력사들이 내년 주 52시간 적용을 앞두고 공멸 위기에 놓였다. 조선업 생산 현장의 80%를 사내 협력사가 차지하는 현실에서 주 52시간이 적용되면 납기일을 지키기 어려운 데다 임금 감소에 따른 인력 유출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조선업 협력사 경영진은 호소했다. 조선업계는 정부의 주 52시간제 적용이 조선업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다.조선업은 발주처의 인도 일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특히 조선업 특성상 선후 공정 간 협업이 중요한 데다 생산 과정에서 환경적 제약도 많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긴급 돌발 공사가 자주 발생한다. 이처럼 생산 일정이 예측 가능하지 않다 보니 정부가 보완책으로 내놓은 6개월 탄력근무제 활용도 현실성이 없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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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조선소 관계자는 "대형 조선 5사는 현재 주 52시간제를 적용받고 있는데 탄력근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노조 승낙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이게 여의치 않아 사실상 활용 사례가 극히 적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조선업 사내 협력사 관계자는 "정부는 인력 충원으로 해소하라고 하는데, 조선업의 경우 상당한 숙련과 고기술이 요구되는 직종이라 단순히 사람 수만 채우면 일이 되는 작업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조선업 현장 근무가 3D업종으로 젊은 층에 인식되면서 대형 조선소 기술교육원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한 달에 훈련수당 150만원을 받으며 기술을 배울 수 있어도 지원자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적용은 조선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도 반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인향의 경우 근로자들이 월평균 350시간가량을 일하는데 대략 시간당 1만원을 조금 넘게 받는 것을 감안할 때 주 52시간을 적용하면 근무시간이 월평균 209시간으로 줄어들어 월급이 100만원가량 큰 폭으로 줄게 된다. 안전시설 설치 작업의 경우 밤에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근이 적은 편이나 용접·도장 등은 공기가 닥쳐오면 철야 작업도 불가피해 주 52시간을 적용하면 근로자의 임금 감소분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업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는 30대 근로자는 "시급이 높진 않지만 잔업과 야근이 있어 총임금이 높은 편이라 일하고 있는데, 수입이 줄게 되면 굳이 여기서 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임금이 줄어드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부 업체에서는 내년 주 52시간제 적용이 강행될 경우 일단 법망을 피하기 위해 50인 이하 기업으로 회사를 쪼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은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을 적용받는 만큼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벌금을 내가면서 경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것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을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인데, 범법자가 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냐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울산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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