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야당 당직자와 잔을 기울였다. 안주는 정치였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어찌 될 것 같나.” 요즘 들어 ‘밥 한번 먹자’는 안부 인사보다 더 자주 듣는 말이었다. “야당이 너무 별로”라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말을 아꼈다. 한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으나 현장에서 떠올린 바를 말하기엔 찰나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원샷’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민 끝에 건넨 말에 그는 반가운 듯 반쯤 차오른 잔을 응시했다. 뜻이 잘 전해지지 않은 듯해 사과했다. |
배신감은 솜(cotton)과 같다. 한두 방울 물을 먹었을 땐 아무렇지 않은 솜은 단 몇 방울만 더 맞아도 있는 힘을 다해 무게감을 더해간다.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믿었던 상대에게 한두 번 배신을 당하면 허허 웃을 수 있지만 세 번, 네 번 쌓이고 쌓이면 남보다도 못한 적이 되고 만다.
내년 서울시장 보선을 앞둔 야당의 행보가 별로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큰 선거에 앞서 그간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듯한 움직임이 보이는 데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통하지 않고 배신감에 젖은 ‘표 응징’이 있을 뿐인데도 다시 그 노선을 걷겠다는 모습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 안에서 야권 단일 후보를 세우자고 한다.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은 각각 지방선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했다. 김 위원장이 간판을 바꿔 달고, 정강정책을 수술하고, 서진(西進) 정책으로 쇄신까지 단행했다.
문제는 물리적 시간이다. 아직 탄핵정국의 쓰라림을 간직하는 서울시민 상당수에게 국민의힘은 그때 그 ‘미운 정당’일 뿐이다. 이를 대변하는 건 여당이 대놓고 약속을 깬 시점에도 박스권에 갇힌 당 지지도다.
한쪽에선 신당 창당론이 거론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근 들어 선거용(用)으로 비쳤던 신당 대부분은 결과가 좋지 못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지난 총선 때 한 지역의 백전노장들이 함께 새 당기를 들었지만 이들 모두 상당히 아쉬운 성적표를 받고 원(院) 밖으로 떠났다.
필승 카드는 ‘원샷 경선’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서울시장 보선만큼은 당 벽을 허물고 야권 서울시장 후보감을 모두 수용하는 구상이다. 반문(반문재인) 경쟁 아닌 혁신 경쟁을 하고, 국민여론조사가 100% 반영되는 룰에서 가장 능력 있는 ‘시민 후보’를 뽑는 것이다. 다른 인위적인 감동, 극적 연출은 필요 없다. 이 자체가 드라마다.
이렇게 되면 특히 국민의힘으로선 억울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제1야당인데도 왜 우리 힘만 갖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지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이번에도 지면 ‘망한다’는 생각으로 승률을 0.1%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실제로 많은 국민은 굵직한 선거에서 내리 5연패를 한 정당에는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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