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정호승 시인. 김영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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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프니 밥 먹는다. 정호승(70) 시인의 눈엔 외로움도 밥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다. 외로운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차라리 외로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 그래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 새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그런 이유에서 지은 제목이다.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신간 출간 기념간담회에서 정 시인은 이번 책의 특징을 '시가 있는 산문집'이라는 데서 찾았다. 올해 고희를 맞은 시인은 지난 48년간 무려 1,000편 이상의 시를 썼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시를 쓰면서 했던 생각이나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 시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여러 감정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것들을 산문으로 옮기고 시와 짝을 지었다. “내 문학은 시와 산문이라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존재가 형성됐다.” 정 시인의 이 말은 이번 신작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책에는 60편의 시에 관한 60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중 첫 번째인 시 ‘산산조각’에 딸린 산문에서 정 시인은 부처의 탄생지 룸비니에서 사온 부처상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흙으로 만든 거라 정 시인은 혹여나 부처상이 어찌될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 문득, 진짜 부처라면 이런 자신을 불러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라 질타할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 '산산조각'이란 시로 응축됐다고, 정 시인은 산문으로 일러줬다.
부처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책엔 종교적 냄새 또한 가득하다. 운주사 석불의 시선,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 같은 이야기들을 다정하게 들려준다. 실제 정 시인은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은 천주교인이기도 하다. 그는 “직업상 제 작업실 책상엔 부처님도 앉아계시고 십자가상도 있다"며 "인간은 절대적 존재에게 큰 위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가 외로운 존재라 그렇다.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어 고통을 나누는 것 또한 외롭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시대의 성자들과 맹인 가수 부부가 그렇고, 그가 시를 쓰는 이유 또한 그렇다. 정 시인은 “내 존재의 눈물을 닦으면서 쓴 시가 혹시 다른 존재의 눈물조차 닦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도 쓰고 싶은 시가 많을까. “죽음이 찾아왔을 때 ‘아, 아직 써야 할 시가 많이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살아가려 합니다. 가슴 속에 남은 시는 빨리 써버리고, 지금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김단비 인턴기자 94dan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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