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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면 사그라지는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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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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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를 발견한 기분이지 않아요?"

정선 너덜 지대 비탈에서 맞닥뜨린 정선바위솔 군락을 두고

조영학 작가가 한 말입니다.

저 또한 외마디 탄성만 나올 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위 무더기 비탈에 고이 숨겨진 '비밀의 정원' 같았습니다.

너덜을 오르내리고, 가로지르며

어렵사리 만난 터라 더 뭉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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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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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선바위솔을 만나려 먼저 삼척을 찾았습니다.

서울에서 300km를 달렸습니다.

깎아 지른 바위에 자리 잡은 고매한 친구들,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꽃을 피우기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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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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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솔은 어릴 적에 많이 봤습니다.

기와지붕에 자라는 터라 와송이라 불렀습니다.

흙도 없는 기와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터라

늘 신비하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꽃이 핀 와송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2주 전입니다.

성북동 길을 걷다가 우연히 와송을 발견했습니다.

훤칠한 꽃대를 올리고 기와지붕에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이제 막 틘 꽃에 벌들이 수시로 찾아들었습니다.

난데없이 만난 터라 반갑기도 합니다만,

남의 집 지붕에 핀 꽃이니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셀카봉에 휴대폰을 연결하여

찍은 사진으로만 꽃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눈으로 꽃을 제대로 못 봐 아쉽던 차에

조영학 작가가 정선바위솔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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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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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삼척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으니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때 마침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정선에 꽃 핀 친구들이 수두룩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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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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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으로 달렸습니다.

어둑할 무렵 도착했습니다.

너덜을 오르내리며 수색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바위에 터 잡고 곱게 꽃을 틔운 정선바위솔을 만났습니다.

꽃대에 빼곡하게 핀 꽃들,

아무리 앙증맞은 일지라도

꽃잎 다섯 개, 암술 다섯 개, 수술 열 개씩으로

꽃 모양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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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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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가 30cm 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는 참 독특합니다.

위에서 아래까지 내려가며 색이 다릅니다.

게다가 아래에 작은 꽃들을 여럿 거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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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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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과 색이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흙 한 줌도 없는 위태로운 바위에서

먼지 같은 흙에 실낱같은 뿌리를 박은 채

살아내고 있는 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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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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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학 작가가 들려주는 바위솔 이야기는 애달픕니다.

"우리나라에 바위솔이 한 10여종 되요.

게 중에서 정선바위솔 색깔이 특히 아름다워요.

옛날 사람들은 바위솔보다

기와에서 자라는 와송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죠.

그런데 지붕 개량하고,

몸에 좋다고 캐가고 이러다가 귀한 꽃이 돼버린 거죠.

생태가 좀 재밌는 꽃이기도 해요.

얘가 사실은 다년생이거든요.

그러니까 10년도 살고 20년도 살아야 하는데,

보통 2년이나 3년이면 다 죽어 버려요.

왜 그러냐면 얘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어요.

그러니까 살모사 같은 꽃인 거죠.

그래서 다년생인데도 불구하고

한 해에 꽃을 피우면 1년생,

두 번째 해에 꽃을 피우면 2년생,

세 번째 해에 꽃 피우면 3년생,

이렇게 끝이 난다는 거죠.

삶이 좀 슬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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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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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고자 오매불망했는데,

이 꽃이 그들 삶의 마지막 종착지라니

여간 짠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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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 정선바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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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을 오르내리고 가로지르다

어렵사리 만난 '비밀의 정원'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들 삶의 마지막 모습이니 좀 더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후, 손전등을 비추어 한 컷 찍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 받은 꽃이 오롯이 사진에 맺혀 왔습니다.

이 꽃에 맺은 열매를 퍼뜨리고 나면 그들은 사그라질 겁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퍼뜨린 열매는

또 다른 '비밀의 정원'을 만들 것이란 기대를 품은 채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인의 SNS에 그 '비밀의 정원'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꽃 하나 없이 텅 빈 바위인 채였습니다.

누군가가 모조리 긁어가 버린 겁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정선바위솔이 퍼뜨린 열매가

또 다른 '비밀의 정원'을 만들 것이란 기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날의 사진이 이 친구들의 '영정사진'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싹 긁어가면

오래지 않아 이 친구들을 볼 수 없을 게 자명하니

더 안타깝습니다.

'핸드폰사진관 야생화편'을 연재하면서

초지일관 조영학 작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 꽃 하나 캐가는 데서 멸종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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