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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ESG 투자 활성화하는 이유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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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요즘 ESG 투자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은행들은 ESG 채권을 잇따라 발행하고 있고, 여러 연기금들도 ESG 투자 확대 방침을 밝히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이니셜인데, ESG 투자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ESG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경제 활동이나 투자에 있어 공적인 플레이어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막론하고 투자의 세계에서는 연기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 있어서는 정부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재정지출 급증으로 정부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연기금이야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주체가 아니다. 정부는 이익이 아닌 명분이 있는 지출을 해야 하는데, 성숙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복지성 지출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야 그 씀씀이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도시화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봉건제가 분권적 질서로 이뤄졌다면 자본주의는 집중의 성격이 강하다. 흩어져 일하던 농업 노동자들이 토지를 떠나 공장으로 모여야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뤄지는데, 공장 노동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일련의 과정이 도시화이다. 주택이 필요하고, 도로를 닦아야 하고, 학교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도시화가 마무리되면 정부활동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축소된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85%에 이르렀다. 90%가 넘는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1990년대 초 이후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정부는 토목사업에 경제적 자원을 집중해서 썼다. 차도 잘 안 다니는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놨고, 관공서 건물을 대규모로 신축했다. 민간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커졌지만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으니 토목에 돈을 쓴 것이다. ESG 투자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훨씬 더 활성화돼 있는데 이 역시 자본주의의 활력과 연관돼 있다고 본다. 2000년대 들어 그나마 민간 부문에서 혁신이 있었던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다. 일부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소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경제의 활력은 크게 떨어졌다. 고령화와 저성장, 정부지출 증대와 공공부채 증가, 중앙은행의 영향력 증대라는 일련의 흐름이 고착화되고 있다. 유럽의 ESG 생태계는 정부가 만들어왔다.

정부의 역할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은 토목을, 유럽은 ESG를 선택한 데는 지적 전통의 차이도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환경파괴의 위험을 경고한 로마클럽이 1968년에 만들어졌고, <성장의 한계>라는 고전이 출간된 시기가 1972년이었다. 또한 녹색당이라는 생태주의 정당이 현실에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만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유럽에서 ESG 투자가 활성화됐던 이유를 민간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명분이 필요한 경제활동이 필요했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다. 요즘 자주 듣게 되는 ‘그린뉴딜’ 역시 원조는 유럽이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유럽에서 가치추구가 결부된 성장전략으로 ‘그린뉴딜’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된 바 있다. 앞으로 ESG라는 개념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큰 정부’의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코로나19 발병 이전에도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동안 양적완화 등으로 많은 돈이 풀렸지만, 그 돈이 실물경제가 아닌 자산시장으로만 갔다는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큰 정부를 주창하는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경제활동의 기준을 가치지향적으로 만들고, 공적연기금이 투자를 늘리면서 ESG 생태계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치지향적 투자를 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지난 10년간 코스피의 연율화 수익률은 1.4%에 불과했다. 투자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더라도 장기 성과를 개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민간이 주도했던 시장 자본주의의 활력 저하의 산물로서 ESG를 바라본다면 이 개념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민간의 활력이 저하되는 상황이라면 전통적 투자의 비중을 낮추고, 가치지향적 투자를 늘리더라도 여기에 수반될 기회비용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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