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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이건희 회장의 혁신 스토리…역발상 반도체·휴대폰 화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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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제공=삼성전자




아시아투데이 황의중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과감한 판단과 결단으로 삼성그룹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오늘발 메모리반도체 1위의 삼성전자와 갤럭시폰의 위상은 이 회장 때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초장기인 1983년께 이 회장이 내린 결단은 삼성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시장에서 올라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지,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고, 트렌치는 밑으로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개발진 사이에서도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의견이 양 갈래로 나뉘었다.

당시 회의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처음 시도하는 기술인 스택 공법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자, 이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이 회장의 결정은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당시 트렌치 방식을 택했던 경쟁업체는 스택 방식을 취한 삼성전자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어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강국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업체가 된다. 엔지니어 감각을 지닌 이 회장은 이후 각종 제품 개발에서도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모토로라가 처음 휴대전화를 내놓은 이후 그때까지 휴대전화의 통화(SEND)와 종료(END) 버튼은 일괄적으로 숫자키 아래에 있었다. 삼성 역시 처음 개발한 휴대전화는 이런 관행을 따라 제작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제품을 살펴보다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가장 많이 쓰는 키가 통화와 종료 키인데, 이게 아래쪽에 있으면 한 손으로 전화를 받거나 끊기가 불편하다”며 “두 키를 위로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했다.

고객 입장에서 통념과 달리 생각한 결과. ‘이건희 폰’으로 불리는 이 휴대폰은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회장의 삼성 폰에 미친 영향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1994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제품 출시를 무리하게 서두르다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

“불량은 암”이라며 질타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량품이 나오자 소비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직접 지시를 내린다. “무선전화기 품질 사고 후 현재까지의 실천 경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하고, 전 신문에 과거 불량 제품을 교환해주겠다는 광고를 게재해야 한다”

이후 삼성은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실은 뒤 불량 제품을 교환해줬고, 1995년 3월 9일 특단의 조처를 한다.

시중에 판매된 무선전화 15만 대를 전량 회수해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 쌓았고,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머를 든 몇 명의 직원들이 전화기 더미를 내리쳐 산산조각을 낸 뒤 불구덩이에 넣은 것이다.

당시 잿더미로 변한 무선전화는 150억 원어치의 분량이었다. 이른바 ‘휴대폰 화형식’이라고 불리는 이 일의 효과는 컸다. 이후 삼성 폰의 불량률은 떨어졌고, 이 사건은 ‘애니콜’과 ‘갤럭시’로 이어지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신화의 밑거름이 된 일화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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