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사진출처 = 연합뉴스[ |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온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갈'은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고, 결과적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순간이자 이 회장의 생전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목된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한 1993년 6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68일간 독일, 스위스, 영국, 일본을 오가며 1800명과 350시간에 걸쳐 간담회를 했다. 사장단과는 800시간이 넘는 토론을 이어갔다. 평소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는 과묵한 이 회장이지만 이 기간에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삼성그룹은 당시 이 회장이 한 발언을 33개 주제로 분류해 '지행 33훈'으로 정리했다. A4용지 85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지행이란 알고(知), 행동하며(行), 쓸 줄 알고(用), 가르치고(訓), 평가할 줄 아는(評) '지행용훈평'의 준말이다. 이 회장은 리더의 덕목으로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
지행 33훈에 실린 가장 대표적인 경영 철학은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옮겨야 한다는 '질 경영'이다.
질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해야만 국제화·복합화·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 회장은 '위기의식 재무장'을 주문했으며, 신경영 선포 20주년에도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의식은 이 회장이 제시한 장수 기업의 첫 번째 조건이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보자'에서 "진정한 위기의식은 사업이 잘되고 업계 선두의 위치에 있을 때 앞날을 걱정하는 자세"라고 정의했다.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튼튼해지는 방법을 터득하듯, 기업이 성장하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메기론'도 이러한 위기의식에 바탕을 뒀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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