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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정부 “백신 접종 그대로…지자체 단독 중단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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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주·제주 동네병원 중단과

포항시의 ‘접종 유보’ 조치에

질병청 “당국과 협의해야” 제동

사망자 부검서 속속 백신과 ‘무관’

[경향신문]

경향신문

한산한 예방접종 창구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사망했다고 신고된 사례가 속출하면서 23일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의 독감 예방접종 창구 앞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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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질병청)이 23일 국가예방접종 사업을 당초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최근 발생한 독감 접종 이후 사망 신고 사례 중 대부분이 백신과 연관성이 없으며, 동일한 제조번호 백신을 접종한 뒤 사망한 사례가 있지만 예방접종을 중단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서울 영등포구가 백신 접종 일시 유보를 권고한 데 이어 경북 포항시도 접종 유보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지자체가 보건당국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독감 백신 접종 중단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문가들도 백신과 사망의 연관성은 낮다고 보지만, 국민 불안 확산과 백신에 대한 신뢰 저하 등을 우려하며 신속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20건 부검 중 13건이 ‘백신과 무관’

질병청은 이날 오전부터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회의와 예방접종 전문위원회를 연달아 개최해 “사망 신고 사례 26건은 백신 접종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1시 현재 신고된 사망 사례 36건 중 70% 이상에서 인과관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가 사망사례 20건을 부검한 중간결과를 보면, 13건이 예방접종과 인과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인은 심혈관 질환 8명, 뇌혈관질환 2명, 기타 3명 등이었다. 7건은 추가 검사가 진행 중이다. 부검을 하지 않은 6건 중 4건도 질병사 3명, 질식사 1명으로 예방접종과는 연관이 없었다. 지난 16일 인천에서 사망한 A군(17)도 백신 접종과 무관하며, 21일 대구 B씨(78)도 질식사로 밝혀진 바 있다.

질병청은 24일 예방접종 전문위원회를 열어 향후 접종 계획을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접종 중단과 관련한 입장 번복 등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23일 회의에서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을 맞고 사망한 4건(각 2명)을 두고 해당 백신의 재검정 또는 봉인(사용중지) 여부도 논의했다. 질병청은 “예방접종과 사망과의 직접 인과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망 등 중증 이상 반응이 2건 이상 발생할 경우 검토할 예정이며 현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도 4개 제조번호에서 사망자가 2명가량 발생한 것은 확률상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하나의 제조번호에서 5~6명씩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문제가 있다고 의심할 수 있지만, 4개 제조번호에서 각 2명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같은 제조번호 백신이 15만개가량 생산되는 만큼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 유통되는 독감백신은 10개사 12개 품목이며, 제조번호는 202개에 불과하다.

제조공정이나 유통과정 외에 백신 자체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최근 사망 사례가 백신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전신 중증 알레르기)와 길랭·바레증후군(신경 염증성 질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나필락시스는 접종 후 매우 단시간 내에 일어나는데, 보고된 사망 사례는 너무 시간이 길다”며 “길랭·바레증후군은 대부분 반나절에서 몇 주 사이를 두고 근육 무력증이 발생한다. 현재 사례들은 급성 사망으로 보이며 그런 증상에 대한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사인 중 불명에 해당하는 사망이 전체의 10% 정도”라며 “현재 보도되는 수준의 사망이 일반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맞을까 말까 하다가 안 맞더라”

보건당국 발표에도 독감 백신 접종자는 줄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 병원은 “원하는 사람에 한해 접종하고 있는데 일주일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며 “맞을까 말까 고민하다 안 맞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독감 백신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의료기관들은 아예 자체적으로 접종을 중단하고 있다.

경북 포항시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오는 29일까지 일주일간 유·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모두 유보하기로 했다. 보건소 예방접종은 일시 중단했으며, 민간 의료기관에도 독감 백신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접종 중단을 권고했다.

의협과 영등포구가 전날 독감 백신 접종 중단을 권고한 이후 일선 병원들도 접종을 일시 중단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650개 병·의원 중 23곳이 접종을 중단했다. 제주에서도 민간 의료기관 72곳이 접종을 일주일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도 “무료 접종은 의협 권고에 따라서 29일까지 중단했다”고 밝혔다. 영등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박모씨(48)는 “보건소 공지 이후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들도 돌려보내고 있다”며 “아직 정부가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보류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독감 백신 접종 중단 분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이날 참고자료를 내고 “향후 전체 국가예방접종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접종 유보 여부를 결정하지 않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한편 식약처는 백색 입자가 발견된 독감 백신의 안정성 시험 결과를 다음주 중에 공개할 방침이다.

박채영·이창준·강현석·김은성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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