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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절하게 재미있는 축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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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축구왕 이채연

유우석 글·오승민 그림/창비(2019)

한겨레

축구를 진지하게 본 것이 언제였더라. 아무래도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마지막이지 싶다. 경기 내내 그저 공만 쫓아다니는 무식한 스포츠라 그런가, 도통 축구의 재미를 모르겠다(축구 팬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한데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다가 처음으로 축구를 직접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축구 팬 김혼비가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에 들어간 날 선배 언니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호언장담하는 말 때문이었다. “첫 반년을 넘긴 사람들은 평생 축구 못 그만둬요, 이거, 기절해요.” 정말 축구는 기절하게 재미있을까.

야구, 농구, 달리기, 자전거, 티볼 등 전력으로 운동하는 어린이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흥미롭게도 동화 속에서 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도 사라졌다. 과거 체육 시간이면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하는 식으로 불문율이 있었다. 남녀가 한 팀이 되어도 여자들은 수비를 하거나 공이 오면 피하며 ‘운동 못 하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당연시했다. 하물며 축구는 오랫동안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세상에는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여자 축구부를 맡았던 유우석 작가는 <축구왕 이채연>에서 축구를 서사의 뼈대로 삼아 이런 성 역할의 문제는 물론이고, 축구의 맛, 팀워크의 맛까지 전한다. 학교에 여자 축구부가 생겼다. 엄마가 아마추어 축구팀원인 신혜, 운동을 좋아하는 지영이, 채연이와 서먹한 소민이 등이 가입했다. 축구의 ‘축’자도 모르던 채연이도 친구 따라 축구부에 들어갔다. 채연이와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축구팀 그리고 지역 아마추어 여성축구단 캥거루 팀과 연습 게임을 하며 서서히 축구의 맛을 알아가고 진지해진다. 드디어 학교 스포츠 클럽 대회에도 도전하는데 과연 진짜 시합에서 공격수 채연이는 골을 넣을 수 있을까.

축구부를 맡은 곰 선생님은 “축구는 움직임의 운동이야. (...) 잊지 마. 남의 움직임에 나의 움직임을 맞춘다. 축구가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 혼자서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축구란 옆에 있는 사람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열한 명이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걸 몸으로 알아간다. 축구를 즐기게 된다는 건 축구팀이 한 가족이 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의 오해도 풀리고 상대를 경쟁자로만 보던 아이들도 변한다.

모든 스포츠는 고통을 수반한 기쁨이 있다. 채연이 말처럼 “운동장을 달리며 온 신경을 공에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내 숨소리와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만 느껴질 뿐이다.” 몸을 움직일 때 느끼는 희열이다. 축구든 야구든 티볼이든 자전거든 뭐든 좋다. 아이들이 어서 밖으로 나가 땀 흘리는 만큼 단단해질 그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건강한 몸과 마음의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의 서사를 만나면 좋겠다. 초등 4∼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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