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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권위 대신 품위…그는 ‘조용한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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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평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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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디터 출신 슈라이버 집필
지휘 일생 본 그대로 담백히 그려
카라얀과 달랐던 민주적 리더십
“자신을 낮춰 음악이 흐르게 해”

음반 표지의 지휘자는 늘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표정은 근엄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접어들어 어떤 지휘자 한 명이 평범한 셔츠 차림으로 등장했다. 얼굴이 약간 길고 코가 유난히 큰 사람이었다. 푸른색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린 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검은 정장과 지휘봉으로 상징되는 ‘마에스트로 권력’에 무심해 보였다. 음악은 그저 삶의 일부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그가 바로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압빠도’라고 부른다.

“우리 시대의 가장 품위 있고 영향력 있는 지휘자”(음악평론가 요아힘 카이저)로 손꼽혔던 아바도의 평전(사진)이 나왔다. 1978년부터 2002년까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문화에디터로 일했던 볼프강 슈라이버(81)가 썼다. 1970년대부터 아바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저널리스트가 집필한, 상당히 신뢰할 만한 평전이다. <아바도 평전 - 조용한 혁명가>(풍월당)라는 제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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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형식이어서 읽기에 좋다. 어떤 평전들은 인물이 살아온 연대를 집필자가 자의로 배치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슈라이버는 정공법으로 아바도의 삶을 기록한다. 밀라노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빈에서의 유학 생활로 시작한다. 이어서 뉴욕, 런던, 시카고, 베를린을 오갔던 지휘 인생을 차례로 되짚는다. 집필자의 시선이 종종 드러나지만 과하지 않다. 아바도 본인의 육성, 또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음악가들의 증언을 적절히 배치했다.

보수적인 라 스칼라 극장의 상임지휘자였던 아바도의 좌파적 행보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열렬한 지지자들도 얻었다. ‘방랑하는 아바도 팬클럽’의 멤버였던 한 여성은 “(전통에 익숙한 관객에게) 갑자기 신음악을 꺼내 보이는 사람, 아도르노의 철학을 아는 사람, 쇤베르크와 슈톡하우젠 같은 현대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지휘자”의 신선함을 언급한다. 아바도는 ‘벨칸토의 신전’이었던 극장을 “만인에게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공연장”으로 만들려 했다. 39세의 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즐겼으며 좌파적 색채가 뚜렷했던 루이지 노노의 대작 세 편을 세계 초연했다.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취임했던 아바도는 단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나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는 걸 원치 않는다. ‘클라우디오’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카라얀 시절부터 상명하복에 익숙해진 단원들, 그중 일부는 이 솔직함에 동요했다. 아바도의 민주적 리더십, 모든 면에서 카라얀과 달랐던 그의 행보는 신뢰와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불평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불쾌한 7년’이라는 악의적 기사로 마에스트로의 리더십을 깎아내렸다. 이듬해 아바도는 “2002년 끝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사임 이유를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아바도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은 위암 수술 이후 포디엄으로 돌아온 그를 잊지 못한다. 깡마른 아바도가 2000년대 들려준 음악은 ‘영적인 차원’에 도달해 있었다. 책은 ‘죽음과 변용’이라는 마지막 장에서 2014년 1월 타계한 아바도를 음악계가 어떻게 추모했는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띈다. “(우리는) 위대한 인도주의자를 잃었다. 불굴의 이상주의로 음악이 영혼을 고양하고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은 인류의 친구를 잃었다.” “음악은 그를 관통해서 흐른 것 같다. 그는 음악에 방해가 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낮춤으로써 그렇게 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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