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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부산국제영화제, 차분한 관람열기 뒤안 그리운 왁자지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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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속 열리는 영화제 풍경]

코로나 여파로 개·폐막식 등 않고

영화의전당서 관객 4분의1 한정

큐알코드·손소독 거쳐 좌석 거리두기

‘군산전기’ 상영 뒤 관객과 대화

문자로 질문하고 감독이 답변

‘잔혹한 도축장’은 이란 감독과

화상전화로 작품 얘기 나눠

관객 “축제 같은 분위기 없지만

이렇게라도 올 수 있어 다행”


한겨레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관객들이 개막작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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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오면 설레고 축제 같은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너무 차분해서 아쉬워요. 그래도 이렇게 올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올해 영화제 아무 데도 못 가서 답답했는데,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열어줘서 감사합니다.”

광주에서 온 정수정(21)씨가 말했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첫날인 2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막 <군산전기>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4년 전 처음 부산영화제에 온 뒤로 해마다 빼먹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에도 직장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부산에 왔다. 그는 “영화제에서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해 모두 25편을 예매했다”며 웃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영화제는 개·폐막식, 레드카펫 행사, 야외무대 인사 등이 없이 영화 상영에만 집중한다. 상영관은 영화의전당으로 한정했으며, 좌석 간 거리두기로 관객을 4분의 1 수준으로만 받는다. 이 때문에 티켓 구하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지난 15일 예매를 오픈하자마자 인기작들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22일 오전 현재, 상영작의 89%가 동났다. 현장 매표소는 따로 운영하지 않고, 모바일 티켓으로만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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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관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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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달리 기자들 또한 온라인으로 티케팅을 해야 했다. 치열한 클릭 끝에 티케팅에 성공한 <군산전기>를 보러 21일 오후 1시께 영화의전당에 가보니 건물 주변에 울타리를 두르고 8개 게이트를 통해서만 들어가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선지 한산했다. 게이트에서 정보무늬(QR코드) 등록을 하고 체온을 재고 손소독을 한 뒤 모바일 티켓까지 보여주니 종이 팔찌를 채워줬다.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표시다. 상영관엔 비워둔 좌석마다 상영작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영화제만의 특별한 거리두기 풍경이다.

군산이라는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음악·무용을 접목한 ‘시적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졌다. 사회자인 강소원 프로그래머와 문승욱 감독 사이에 투명 가림막이 놓였고, 스크린에 정보무늬가 떴다. 이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니 질문을 입력할 수 있는 사이트로 연결됐다. 관객들은 마이크로 직접 묻는 대신 문자로 질문했다. 이를 사회자가 대신 물으면 감독이 대답했다. 극장은 조용했지만, 소리 없는 질문의 열기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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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선 휴식 공간에도 좌석 간 거리두기를 적용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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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나가 식사를 하고 오후 5시 영화를 보러 다시 건물에 들어가려 하니 게이트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 제법 됐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팔찌를 보여주니 손소독만 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한 관객은 “상영관에 들어오기까지 20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철저한 방역체계에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란 영화 <잔혹한 도축장>을 봤다. 이번에도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란 현지의 아바스 아미니 감독과 화상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영화제는 이번에 외국 게스트를 일절 초청하지 않았다. 대신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 기자회견 등을 진행한다. 아바스 아미니 감독은 “부산에 직접 가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었는데, 못 가서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어 반갑다”며 손을 흔들었다. 관객들도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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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온라인 관객과의 대화가 열리고 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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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니 영화의전당에 사람이 더 늘었다. 다들 차분히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로비의 대기석도 거리두기로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지붕으로 덮인 야외극장에선 우산이 필요 없었다. 저녁 8시, 4천명이 들어가는 야외극장에 600명이 앉았다. 개막식은 영상으로 갈음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봉준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세계 여러 영화계 인사들이 축하 메시지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용관 영화제 이사장도 영상으로 개막을 선언했다. 곧이어 관객들은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늦은 밤, 해운대 바닷가 술집 ‘미나미’에 갔다. 영화제가 열릴 때면 감독, 배우, 제작자 등 많은 영화인이 모여들어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명소다. 하지만 이날 밤에는 영화인을 볼 수 없었다. 손님들도 많지 않았다. 내년엔 이곳이 예전처럼 영화 이야기로 왁자지껄했으면 하는 바람을 소주잔에 담아 삼켰다.

부산/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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