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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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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귀면, 금동사자상···경주 황용사터에서 금동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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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대 호국사찰 皇龍寺와는 다른 절

조선일보

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제 유물 일괄. 사찰에서 의식용으로 깃발을 매달아두는 장대로 썼던 보당(寶幢), 금동귀면, 금동사자상,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촉대받침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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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 창건된 경주 황용동 황용사 절터에서 금동귀면과 금동사자상 등 금동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2018년부터 황용사터를 발굴 조사 중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스님)는 올해 중심사역 서쪽구간 조사에서 투조(透彫·금속판 일부를 도려내는 것) 기법으로 만든 금동귀면 2점과 금동사자상 2점, 금동보당 당간과 기단,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촉대 받침 등 금동제 유물 20여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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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귀면.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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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에 있는 사찰로, 신라 최대 호국(護國) 사찰인 황룡사(皇龍寺)와는 다른 절이다. 연구소는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축조한 후 위에 건물을 조성했던 산지형 가람으로 통일신라 때 창건돼 조선시대까지 계속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2018년 손바닥만한 투조 금동귀면이 출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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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사자상.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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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사자상과 받침을 다른 유물과 비교해 추정 비교한 모습.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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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는 투조 금동귀면이 추가로 2점 더 나왔다. 최인창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높이 13㎝ 크기로, 2년 전 확인된 금동귀면과 비슷하지만 크기나 수염, 귀모양 등이 조금씩 다른 형태”라고 했다. 앞·뒷다리를 쭉 뻗은 금동사자상도 2점이 출토됐다. 크기는 17㎝ 정도. 촉대나 광명대를 받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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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 당간부.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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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 기단부.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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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찰에서 의식용으로 깃발을 매달아두는 장대로 썼던 보당(寶幢)이 처음 출토돼 눈길을 끈다. 최 팀장은 “전체 온전한 모습은 아니고 깃발을 매다는 당간과 아래 기단부만 나왔는데, 두 부분을 합친 길이만 110㎝에 달한다”며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국보 제136호·높이 73.8㎝)보다 크고 제작 시기도 앞선다”고 했다. 국내 발굴조사에서 보당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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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에서 출토된 금동 보당을 다른 보당 유물과 비교한 모습.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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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이밖에도 지름 30㎝가 넘는 금동불상 옷자락과 금동촉대받침 등 다양한 금동제 유물이 확인됐다”며 “불국사 말사였던 황용사의 위상이 창건 당시 경주 내 주요 사찰과 비교될 정도로 높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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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동 황용사터 중심사역 전체 전경. /불교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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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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