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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불국사 말사에서 신라산 깃발대 ‘보당’과 큰 불상 옷자락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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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사터에서 보당 등 금동유물 20여점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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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터 서쪽 구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보당과 기단. 국내 유적에서 보당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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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터 출토 보당을 다른 보당 유물과 비교한 모습.


신라 사람들이 절 안에서 불교예식을 벌일 때 사찰의 깃발이나 장막을 내거는 장대로 썼던 ‘보당’이 경북 경주 절터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주 황용동에 있는 황용사(黃龍寺)터의 서탑 터 일대 유적들을 조사하다 통일신라 시대 사찰의 실내 깃대인 금동제 보당을 발굴했다고 21일 밝혔다.

보당은 깃발을 매다는 장대인 당간 부분과 당간을 아래서 받치는 지주부와 기단부로 이뤄진다. 출토품은 당간과 기단부만 남은 모습으로 나왔는데, 두 부분을 합친 길이만 110cm에 달한다. 국내 유적에서 보당이 발굴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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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다리를 뻗치고 있는 금동사자상. 무언가를 받치는 용도의 장식 기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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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음 무늬가 있는 금동제 귀신얼굴상. 2018년 발굴품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수염과 귀모양 등이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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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모은 황용사 출토 금동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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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보당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용머리 달린 고려시대 유물(길이 73.8cm)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출토품은 리움 소장품보다 훨씬 크고 제작시기도 앞서 학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당이 나온 서탑 터 주변에서는 회랑과 건물터, 석축, 석렬 등도 잇따라 드러났다. 이 유적들에서는 2018년 절터에서 처음 나왔던 금동제 뚫음무늬 귀신얼굴상(귀면상) 2점이 추가로 나왔고, 앞뒷다리를 뻗은 모양의 받침용 금동사자상 2점과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제 연봉, 촛대받침 등도 수습됐다. 금동불상 대좌 위에 흘러내린 형상의 옷자락 조각은 직경 30㎝가 넘어 전체 비례상 불상의 높이는 1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 쪽은 “20점 이상의 다양한 금동제 유물이 확인돼 창건 당시 절의 위상이 경주의 도심사찰 못지않게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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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당과 귀면상 등이 나온 황용사터 서쪽 구역 발굴현장. 탑터와 건물 흔적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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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 터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덕동호를 지나 감포 쪽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 절골에 자리한다. 경주 도심의 국가사찰 황룡사(皇龍寺)와 달리 불국사의 말사였다고 전한다. <불국사고금역대기>에는 신라 선덕여왕 2년인 633년 황둔사란 이름으로 창건됐다가 소성왕(재위 799∼800) 때 황용사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2018년 첫 조사 당시 뚫음무늬 있는 금동제 귀신얼굴상(귀면상)과 석불, 소조불, 용두 조각, 명문 기와 등이 출토됐고, 통일신라~조선시대 건물터 5동과 탑 터, 축대 등도 다수 확인된 바 있다. 22일 오후 2시 발굴현장 공개 설명회가 열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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