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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제로페이 수수료 혜택, 1년에 만원도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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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세금 투입, 제로페이 실태

“배달 음식 반값 할인해준다는데 할인 금액은 누가 부담하는 건가요? 우리가 낸 세금은 아니겠죠?”

지난 16~17일 온라인에서는 ‘띵동’이라는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이 화제였다. 띵동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는 이른바 ‘공공 배달 앱’인데, 배달 음식 값을 50% 할인해준다는 파격 혜택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2만원짜리 치킨을 주문하면 1만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이벤트가 시작되자 일부 시간대에는 앱이 불통할 정도로 주문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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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도입한 제로페이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세금이 500억원 넘게 투입됐지만, 정작 소상공인들이 아낀 결제 수수료는 5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2월 서울 시내에 붙어 있는 제로페이 광고.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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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값 할인을 받으려면 조건이 있었다. 제로페이 앱으로 ‘서울사랑상품권’을 써서 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사랑상품권은 서울시가 세금으로 구입액의 10%가량을 깎아준다. 결국 세금으로 할인해준 상품권을 사서 결제하면, 공공 배달 앱이 세금 지원을 받아 또 깎아주는 셈이다.

공공 배달 앱 할인 이벤트에 세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내 세금을 멋대로 쓰고 생색이냐” “배달 음식 안 먹는 사람은 뭐냐” 같은 댓글이 달렸다.

◇소상공인 눈물 닦아주겠다던 제로페이, 체리피커 혜택 따먹기 수단으로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제로페이가 각종 선심성 정책 수단으로 변질하고 있다. 제로페이에 투입되는 세금 혜택이 당초 계획대로 소상공인이 아니라 대부분 할인 이벤트 같은 엉뚱한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의원이 간편결제진흥원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제로페이 결제액은 6417억원으로, 같은 기간 개인 카드 결제 금액(477조1000억원)의 0.13%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제로페이 결제액 대부분은 지역사랑상품권 등 모바일 상품권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제로페이는 은행 계좌 등에 돈을 충전해두고, 제로페이용 QR코드를 읽혀 결제가 이뤄지는 서비스로 출시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런 ‘간편 결제’ 방식으로 제로페이를 활용한 금액은 1047억원에 그쳤다. 전체 제로페이 결제액의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84%(5370억원)는 미리 사둔 지역사랑상품권을 제로페이 앱에서 쓴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이다. 예컨대 ‘종로사랑상품권’은 서울 종로구에서만 쓸 수 있다. 지자체는 세금을 들여 상품권 가격을 많게는 10%씩 깎아줬다. 그러면서 발 빠른 ‘체리피커(혜택을 잘 챙기는 소비자)’들이 상품권을 쓸어 갔다. 일부 지자체 상품권은 출시 10여 분 만에 판매가 마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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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랑상품권 덕분에 제로페이는 겉보기엔 급성장했다. 제로페이가 서울 25구 등 43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 판매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공 배달 앱이 지역사랑상품권으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끼워 팔기’도 성행했다. 제로페이가 성장한 게 ‘세금으로 할인해준 상품권’ 덕분이라는 뜻이다.

이런 ‘세금 뿌리기’가 끝나면 제로페이의 성장세는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제로페이 결제액 급증 현상은 일부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 할인 판매 등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면서 “(이를 제외하면) 제로페이로 결제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했다.

◇소상공인 수수료 절감액, 제로페이 만드는 데 쓴 돈 10분의 1도 안 돼

제로페이라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 윤창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서울시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기부의 2018~2021년 제로페이 인프라 구축 관련 예산은 342억원에 이른다. 서울시도 같은 기간 190억원을 쓸 계획이다.

은행 등 민간 금융사도 등 떠밀려 제로페이를 유지·관리하는 비용을 내고 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금융사는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제로페이 회비로 41억원을 냈다. 결제 1건당 600원 수준이다. 이 금융사들이 가맹점에서 받은 제로페이 결제 수수료 수입은 3억원도 안 된다.

민관(民官)이 인프라 유지·구축에 수백억원을 퍼부었지만, 정작 제로페이로 소상공인이 아낀 결제 수수료는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소상공인의 수수료 절감액은 최소 28억원, 최고 50억원으로 추정된다. 가맹점 1곳당 절감액은 5300~9300원 정도다. 많아봤자 2018~2021년 제로페이 유지·관리비의 10% 정도인 것이다. 작년과 올해 쓰는 유지·관리비(315억원)과 비교하면 9~16% 정도다. 제로페이 사용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데 드는 돈은 빼고서다.

윤창현 의원은 “제로페이는 정부가 결제 시장에 뛰어드는 신종 관치로 시작해 지금은 상품권 판매 채널로 변질했다”면서 “민간 사업에 대한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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