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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트럼프 흔들리는 조짐…바이든 되면 ‘체계적 북미협상’ 나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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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ㅣ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미 대선 2주앞…트럼프 캠프 기동성 떨어지고 내부도 흔들려

힐러리 싫어 투표 안한 민주당 백인들 ‘반트럼프 투표’ 예상

트럼프 선거운동 핵심 ‘비선조직’의 경합주 공략이 만판 변수

개표결과 불복 혼란 오더라도 미국 시민사회 해결 역량 있어

바이든, 클린턴 말기 ‘북미협상’주역…북한 끌어당기는 외교 펼 것

미 정계 급변하는 지금이 한국에 기회…안보 이슈에 초당적 입장을

한국 진보 정치인, 미국 내 반대 진영과 적극 대화로 공감대 넓혀야


한겨레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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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꿀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11월3일(현지시각)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뚜렷히 앞서고 있지만,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30년간 미국 정치 현장에서 활동해왔고, 선거 현장에 가장 밀착해서 판세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매우 조심스럽게 바이든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는 “바이든이 우세하지만, 트럼프가 진다고 얘기할 수 없는 선거”라면서도, 트럼프 선거운동 캠프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혼란을 뚫고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보다는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체계적인 북미 대화가 다시 진전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전망했다. 그는 “미국 정치의 판이 바뀌면서 한국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면서도, 기회를 살리는 것은 한국의 노력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6일부터 18일까지 여러차례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했다.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계속 우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아직 ‘트럼프 아웃’을 예상할 수는 없는 상황인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판세이지만, 트럼프가 진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전국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4년 전에도 막판 여론조사에선 힐러리가 앞섰다며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4년 전 막바지 선거운동에 비해 트럼프 선거운동의 기동성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조지아의 유세에서 ‘패한다면 어쩌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 게 눈에 띈다. 선거운동 캠프 내부가 흔들린다는 소식도 있다. 트럼프에겐 우편투표를 문제 삼아 불복하는 한가지 선택지만 남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단언할 수는 없다. 백인들의 표심과 로저 스톤이 이끄는 트럼프 비선조직의 선거전이 변수다. 트럼프 선거운동의 핵심은 공식캠프가 아니라 이 비선캠프다. 4년 전 스톤이 이끄는 비선조직이 맨해튼에 들어온 러시아 비자금을 활용해 트럼프 선거운동을 한 것이 ‘러시아 스캔들’의 본질이다. 지금도 트럼프 진영이 비선조직을 움직여 불법·탈법 선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막지 못하고 있다.

나는 2016년에 차를 몰고 트럼프 유세 현장을 직접 쫓아다니면서, 중서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시골에서 세상을 등지고 은둔해 살다시피하던 ‘레드넥’(하층계층의 백인)들을 트럼프가 지지자로 끌어내는 현장을 직접 봤다. 러스트벨트는 산업화와 호황을 경험한 뒤, 무분별한 세계화로 제조업이 다른 나라로 이전하면서 폭망한 지역이다. 높은 실업률에 계속 정전이 되고 도로에 포장도 안 돼 있는 곳이 많다. 트럼프 비선캠프는 마을 단위까지 정교하게 민심을 분석해 표가 움직일 수 있는 지역만 골라서 영리하게 공략했다. 그런 방식으로 공화당의 내로라 하는 정치인을 다 떨어뜨리고 후보가 되었고, ‘샤이 트럼프’를 결집해 대통령이 되었다. 최근 트럼프가 퇴원해 선거운동을 재개한 뒤, 승부를 가를 경합주 6곳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여전히 바이든에 뒤지긴 하지만 2~3%씩 급격히 올랐다. 거기서 비선캠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바이든이 4년 전 힐러리에 비해 유리한 요소는 무엇인가?

“2016년에는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이 너무 높았다. 민주당 내 백인 노동자들이 힐러리가 싫어서 투표를 안 했다. 당시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1% 미만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막판 뒤집기로 다 이겼다. 지금 바이든이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비호감도는 높지 않다. 지지율이 계속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힐러리가 싫어서 투표를 안 했던 민주당 백인들이 올해엔 ‘반트럼프 입장’으로 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양쪽 모두 6개 경합주에 집중하고 있는데,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니아 3개주는 이미 바이든 쪽으로 기울었고, 애리조나도 바이든 우세가 유지되고 있다.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는 여전히 박빙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우편투표가 늘면서 바이든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다.

두번째로, 경합주의 백인 노인층이 이제서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을 깨닫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에는 러스트벨트 지역에는 코로나가 심각하지 않고 사망자도 없었다. 그래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코로나가 감기 같은 것’이라는 트럼프 말을 믿었다. 이제는 코로나가 경합주의 시골까지 퍼졌고, 트럼프 본인까지 확진자가 되면서 코로나가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됐다. 트럼프가 코로나 통제와 방역에 실패했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종주의 극우 무장 세력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선거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요소요소에 숨어있던 인종주의 범죄집단들이 고개를 들고 사회로 나와 미국 대도시를 활보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쪽이 이런 폭력집단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연계를 맺고 자금을 지원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개호루라기’(지지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신호)를 드러낼 때마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봉쇄 해제정책에 반대하며 대립했던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해 살해하려던 ‘울버린 파수꾼’이라는 극우단체의 음모까지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 투표 때문에 내가 승리하기 어려울지 모르는데 그것은 부정선거다. 공정하게 감시할 준비를 빨리해야 한다”고 말한 뒤 사흘 만에 5만명 열혈 지지층이 자원봉사자로 몰렸다 트럼프 캠프에서 이들을 플로리다·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노스캐롤라이나 4개 지역으로 나눠서 보냈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에서 재검표를 하게 돼 부시가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동부선거운동을 맡고 있던 로저 스톤이 뉴욕의 폭력배 5백명을 동원해 대학생처럼 옷을 입혀서 재검표가 예정된 4개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감싸고 위협했던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대선 역사상 초유의 불복 사태가 예상되고 있는데, 미국 선거 시스템이 해법을 찾을 수는 있나?

“전문가, 언론들이 선거 이후에 대해 ‘내전 상황’이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고 쓰고 있다. 트럼프가 무장한 세력을 결집해 불법을 저질러도 막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패자가 승복을 해야 승리 발표를 한다. 후보가 패배 인정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선거 당일 개표 결과와 우편투표까지 포함된 결과가 다를 수 있고, 내년 1월20일 임기 마지막날까지 새 대통령이 확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원이나 대법원에서 결론을 내야 하는 전례 없는 고약한 상황도 예상된다. 미국 (헌)법은 평화적 권력 이양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했는지 몰랐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4년 전에도 트럼프의 불복에 대비해 초당적인 수습위원회를 구성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초당적인 해법이 어렵다. 지금 미국 정치권은 민주당, 공화당, 그리고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미국인의 30%가 넘는 광적인 지지자로 분열돼 있다.

하지만, 미국 시민사회의 힘에 기대를 건다. 미국 시민사회는 큰 사건이 나면 굉장히 침착하고 차분해진다. 선거 뒤 내년 1월20일까지 트럼프 쪽 행동으로 혼란이 오더라도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시민사회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지금은 어려운 시기지만 체제를 정비하고 복구해서 결국 올바른 길로 갈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 사회의 분열과 혼란에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미국 사회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가?

“미국 기득권층과 지식인들의 탐욕, 나태, 오만의 결과, 이렇게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민주·공화 양당 정치가 시민사회의 요구를 자기 당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했다. 냉전이 끝나고 9·11 테러와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정당 정치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금 미국의 핵심 모순은 계급 문제, 빈곤의 문제다.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무분별한 세계화의 후유증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후에 공화당은 9.11 테러 이후 전쟁을 치르면서 빈곤 문제를 계속 외면했고, 그런 상황에서 무책임한 티파티 세력이 당을 장악하며 무너졌다. 2007~2008년 금융위기가 월스트리트를 휩쓸었고 오바마 행정부가 집권했지만 일단은 월스트리트를 살려야 하니까, 막대한 구제금융이 다 부자들한테만 들어가 버렸다.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닥치면서, 미국에선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과 대공황,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서 나타났던 3가지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5월 말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순식간에 분노가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35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인종 문제에 대한 분노가 이렇게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종차별 반대와 함께 성난 빈곤 계층이 함께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억눌렸던 분노가 대도시들에서 확 번졌다. ‘부자들을 잡아먹자’, ‘부자들을 공격해라’ 같은 구호가 곳곳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고 ‘법과 질서’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다. 성경의 ‘언덕 위의 하얀집’ 구절을 끌어와 백인들에게 침략자인 시위대, 흑인, 히스패닉들로부터 미국을 지키자고 선동했다.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를 가지고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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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16일 미시간주 노바이에서 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바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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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가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는 만들어지고 있는가. 민주당 내부 급진 진보진영은 미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희망인가?

“민주당의 혼란은 클린턴 행정부가 민주당의 원칙을 허물고 무차별적 세계화 등 우경화 정책을 펴면서 시작되었다. 민주당 내 진보적 정신을 대표하던 캐네디 가문은 2008년 힐러리 클린턴과 오바마가 대선 후보가 되려고 경쟁할 때 오바마를 지지했다. 오바마는 민주당의 방향을 설정해 당을 통합했다. 오바마 다음은 그의 진보 이슈를 진전시킬 후보가 나와야 했다. 그런데, 힐러리는 대통령이 되려는 뜻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바마는 힐러리의 다음 대선 출마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2016년 민주당 진보진영에서 후보가 나와야 했는데, 보수적인 힐러리가 출마하게 되니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 세력들이 갈 곳을 잃고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에게로 결집했다. 힐러리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샌더스에게 승리했고 그에 대한 반발도 커졌다. 민주당 내 노선 싸움이 안에서 정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내 젊은 진보세력으로 주목받는 오카시오 코르테스, 로 칸나 급진 좌파들이 미국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역량을 아직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가치, 인종 문제에 대한 급진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지금 미국을 바꾸려면 중산층의 지지도 같이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든은 우선 이렇게 분열된 민주당을 흩트러뜨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바이든은 중도파이지만 정강 정책을 만드는 태스크포스는 진보 진영에서 주도했고, 경제 정책에 오바마케어, 그린 뉴딜 같은 진보 이슈들이 모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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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공항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제인스빌/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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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고, 북미관계나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식의 전망이 한국에서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트럼프가 계속 대통령인 게 낫다는 논리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까워졌던 것 때문에 그런 주장들이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전쟁 위기를 빠르게 진정시키고 김 위원장과 협상을 한 것은 좋은 역할이지만, 충동적인 정치인인 그가 항구적 평화체제 기반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바이든의 한반도 정책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재판으로 예상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펴는 동안, 바이든이 부통령이긴 했지만 당시 외교안보 정책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를 주도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었다. ‘전략적 인내’에는 그런 방향을 원했던 당시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영향도 컸다.

바이든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려면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를 봐야 한다. 바이든은 상원의원이던 38년의 거의 대부분을 외교위원회에서 전세계 외교를 주도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이 협력해, 북한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을 하는 외교를 펼쳤다. 바이든은 대중국 관계에서 북한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1994년 제네바합의부터 6~7년 동안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했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외 정책 가운데 크게 비판하지 않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중국 정책이고 또하나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긴장 완화다. 민주당도 트럼프의 북한과의 대화는 잘 한 일로 평가하고 있다. 바이든은 북한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체계적 외교를 진전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 정치권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명심해야 하는 점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이 어마어마하다는 현실이다. 이걸 돌파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북한의 협상 의지를 보증하는 역할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이 거기서 벗어나서 부딪히고 있다. 워싱턴 이너서클의 북한에 대한 불신, 인권·가치 이슈와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중요한 과제다.

한국 진보진영이 아직 미국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내 인권단체나 한인들 중에도 보수 쪽 목소리가 강하고, 이쪽 사람들이 미국 주류와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들은 ‘북한과의 대화는 불가능하고, 북한은 소멸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미국 주류 정치권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문재인 정부가 평화와 종전선언 구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크다. 한국의 구상에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과 계속 얘기하면서, 그들이 점점 더 유연해지고 덜 반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진보 정치인들이 미국에 오면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정치인들보다는 입장과 견해를 달리하는 쪽의 의원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 예를 들면 ‘종전 결의안’을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들 하고만 의논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성사될 수가 없다. 현재 종전결의안에 동의한 40여명의 의원들 중에는 단 한명의 공화당 의원도 없다. 이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서 한국 정부의 현안에 가장 반대하는 사람부터 만나서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지지가 넓어진다. 나는 한국 진보 정치인들에게 프리덤 코커스(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를 먼저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한국은 전략적이어야 한다. 약자는 더 영리하게 움직여야 하고, 편의주의와 관성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미국의 무기산업 등 기득권층이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북한과의 긴장 유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정치권력에 대해 지금처럼 영향력이 적었던 적이 없다 이전까지는 미국 정치가 자본에 종속돼 있었는데 오바마 시기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역전이 됐다. 산업과 관련해 정부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군수산업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긴장 해소를 원치 않는 측면은 분명 존재하고 있고 무시할 순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인식하는 면이 있다. 현실이 변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방위산업이 정치 쪽에 선을 대려 무척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종전선언도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게 아니다. 백악관은 의회의 반대를 거스르면서까지 외교를 강행하지는 않는다. 의회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안보, 특히 대북한 이슈에 대해 초당적인 입장과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의 야당 인사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정부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일에 늘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런 점이 큰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트럼프 또는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미중관계는 각각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모두 반중국 입장이다. 미국 민심이 그렇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고립주의를 강조하는 미국 국내 정치에 기반한 전략이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이해관계만 본다. 중국과 갑자기 타협할 수도 있다.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미국 시민사회의 여론, 경제·사회적 가치 문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토니 블린큰(바이든 부통령 시절의 국가안보보좌관·국무부 부장관), 제이크 설리번(바이든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오바마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가 핵심이다. 바이든 진영은 현재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보편적 가치를 버리고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부통령 시절 시진핑과 만났던 바이든은 시진핑에 큰 실망을 느끼고 있고 함께 국제사회 규범을 지킬 동반자가 될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트럼프처럼 거친 대중국 정책은 아니지만, 미-중 관계의 긴장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미일동맹을 중심의 외교였다. 미국의 일본 일변도 아시아 전략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나?

“한국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워싱턴 정계에서 외교전략의 초점은 ‘반중국’이고 그 가운데 90%는 미일관계다. ‘반중국 친일’만 있는 이 판을 냉정하게 보고 앞으로 우리가 3년·5년·10년에 걸쳐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만의 외교는 주목할 만하다. 대만이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기 때문에 워싱턴 정계에서 대만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매우 오래된 긴밀한 관계이고, 최근 중국 견제를 위해 미일관계가 더욱 중시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와 의지를 가지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노력하니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다. 한국의 청와대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한국이 장단기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미국의 주류, 이너서클이 흔들렸다. 이번 대선과 동시에 실시되는 의회 선거에선 정치 신인들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치가 공화당 극우파인 프리덤 코커스와 민주당 내 급진파로 양극화돼 있어, 오랫동안 정계를 주도해온 중도파들이 대거 낙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대 교체가 큰 폭으로 일어나고 ‘초선의 시대’가 열린다. 우리가 이들 초선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외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 주류가 흔들릴 때 소수에겐 기회가 온다.

저는 미국에 사는 250만명 이상의 한국계 미국 시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젊은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정부, 특히 국무부에 많이 진출하라고 조언한다. 미국 외교는 지금 아시아를 가장 중시하고 있고, 한국계가 외교 영역에서 적극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전망하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한국의 미국 전문가들이 외교·안보나 경제에만 집중해 미국 사회의 변화를 예상하고 있는데, 미국을 제대로 보려면 ‘미국 시민의 눈’으로 미국 사회 내부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야 한다.”

김동석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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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이정아 기자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시민의 힘, 유권자의 힘’으로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적 지평을 넓히고 미국 정치에 한국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게 하려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1985년 미국으로 가 정치학을 공부한 뒤 1996년 뉴욕에서 한인유권자 운동을 시작했다. 한인들의 미 의회와 정부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투표 참여를 늘려,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게하는 것이 목표다. 2008년 오바마 대선 선거 캠프에서 활약하는 등 미국 정치권 인사들과 오랫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미국 정치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2007년에는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과 미국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도 해왔다.

그는 한국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시민의 눈’으로 미국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봐야하고, 선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국 정치에 한인들과 한국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려면 미국내 한국계 시민들이 유권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안보동맹이라는 지정학적 중요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인 25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의 미국 사회에 대한 기여를 더욱 중시한다”며 한국계 미국인들의 미국 의회와 시민사회에 대한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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