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매경포럼] 한국 해운산업은 부활할 수 있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달 유럽 노선에 투입된 2만4000TEU급(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초대형 선박 12척이 모두 만선 출항했습니다. 진기록을 달성한 것이지요.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17항차 연속 만선 행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옛 현대상선인 HMM의 한 임원은 최근 해운산업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며 고전하는 항공업계와 달리 국내 해운산업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거래가 늘어난 데다 중국 경제의 반등으로 원자재 수송 물량이 증가하고 운임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12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월과 8월에는 미국 항로 운임이 7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이는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해운업체의 실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HMM만 해도 올 2분기 매출 1조3751억원과 영업이익 1387억원을 달성하며 21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화주들이 선박의 추가 투입을 요청할 정도로 물동량 수요가 늘고 있어 3분기 영업이익은 35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SM상선도 2분기 영업이익이 201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올렸다.

한국의 해운산업은 2016년 1위 업체였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위기를 맞았다. 전 세계 주요 항만들이 한진해운 선박 입항을 거부했고 글로벌 화주들도 한국 선사 이용을 기피했다. 국내 물동량이 급감하며 한국 해운산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한진해운 파산 직후 정부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는 등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HMM과 SM그룹 등 국내 해운업체들은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고 잃었던 항로를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해 7월에는 HMM이 세계 3대 얼라이언스인 '디얼라이언스' 정회원에 가입했고 올 4월부터 미국과 유럽, 지중해, 중동에서 공동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 해운산업이 전성기 수준을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해운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초대형 선박의 추가 확보가 시급하다. 고부가가치·초대형 선박 확보에는 엄청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이인삼각 경기를 하듯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 중국의 메이저 해운사들과 경쟁하려면 지금같이 정부의 정책금융만으로는 역부족이고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종잣돈을 만들고 민간 자금을 유치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국과 일본도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해운산업의 부족한 자금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해양진흥공사가 주도하는 '선박은행' 기능을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선박은행은 정부와 민간이 자금을 조성해 선박을 확보하고 이를 선사에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해운업체는 자금 부담 없이 본업에 집중하고 선박은행은 적정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다. 초대형 선박 발주가 원활하면 국내 조선업체의 일감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해운업의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 초대형 선박 운항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해상과 육상, 항공을 연계한 복합운송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 해운산업도 이런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지난 3년 동안 거대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복원했다면 이제는 해운 강국으로 부상할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장박원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