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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기고] 피살된 해수부 직원이 소환한 딜레마 / 박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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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동실 ㅣ 전북대 초빙교수·전 주모로코대사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우리 수역에서 어업지도선에 승선해 있던 해수부 공무원이 갑자기 9월22일 저녁 북방한계선 너머 북한 수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가 스스로 북한 수역으로 들어간 것인지 사고로 바다에 빠져 흘러간 것인지 아직도 논쟁이 뜨겁다. 우리 군과 해경은 스스로 월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 이르게 된 경위가 어떻든, 북한군의 총격 사살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행위다. 우리 정부는 북한 주민이 우리 영역에서 발견되는 경우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북한으로 보내주거나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도 우리 국민이 그들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경우에 이러한 문명국의 행동 준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런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도 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변화다.

이번 사건은 우리 민간인 국민이 월북하려 했을 때 우리 군이 취했던 대응을 돌아보게 한다. 군이 현장에서 취해야 할 상세한 행동수칙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물론 매뉴얼은 국가보안법 등 우리 국내법 규정에 합당하게 작성되어야 한다.

해수부 공무원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가기 직전에 우리 해군이 적발했다면 어찌 됐을까? 돌아오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경계선을 넘기 직전이었다면 우리 해군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사살했을까? 아니면 인도주의자 함장은 인간의 생명은 우주보다 더 존귀하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따른 처벌을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해상경계선을 수호하지 못한 못난 군인이라는 멍에를 평생 짊어지게 될 터인데도? 선례가 있다.

2013년 9월16일,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그날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에서 월북을 시도하던 민간인 국민 남성을 우리 군이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 남성이 철책을 무단으로 넘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초병들이 “남쪽으로 돌아오라”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불응하고 몸에 부표를 묶은 채 임진강에 뛰어들어, 사격을 실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군의 총격 사살에 대해 여론이나 언론의 비난은 듣지 못했다. 나중에 국가가 배상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군의 정당한 행위로 당연시했던 듯하다.

올해 7월19일에는 새터민 국민이 강화도 북단에서 해병부대의 경계망을 뚫고 헤엄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월북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해병 사단장이 해임됐다. 당시 경계선을 넘기 직전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해병이 발견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한 국민은 우리 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또 다른 국민은 북한군에 의해 죽었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본질은 다르지 않다. 남북 분단의 비극이다. 우리 군은 월북 시도자에 대해 여전히 2013년의 행동수칙 매뉴얼을 따르고 있을까? 오늘의 우리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헌법에는 독일 기본법이나 일본 헌법과 같은 생명권 보장에 관한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통설과 판례는 생명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에 “생명에 대한 권리는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군의 이러한 민간인 사살 행위가 생명권 침해 위헌 행위에서 면책되는 군의 전투 수행에 해당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또한,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조약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누구도 자의적으로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비상시에도 이러한 생명권을 제한하는 조치는 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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