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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양해원의 말글 탐험] [127] 모듬전·모둠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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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모듬전·모둠전 말고….

북녘 권력자가 눈물을 보였대서 그랬나. 자디잔 길거리 광고 문구가 눈길을 잡았다. ‘울면 안 됩니다.’ 뜬금없기는…. 이어지는 글귀에 아차 했다. ‘쫄면 안 됩니다. 냉모밀 됩니다.’ 성탄 축하 번안곡 슬쩍 끌어온 재치가 직업의식에 묻혔다. ‘메밀’이라 했다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으려나.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이 아무리 이름난 소설이기로, 비표준어 ‘모밀’을 어쩌진 못하나 보다. 돼지고기 튀김도 ‘돈가스’ 대신 ‘돈까스’라 늠름히 쓴 곳이 숱하다. 육개장은 어떤가. ‘개장’에 본래 주재료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서 ‘육(肉)개장’인데, 더러 ‘육계장’으로 잘못 적는다.

이런 음식은 표준말이라도 있지. 산행 뒤 막걸리 한잔의 참된 벗은 ‘모듬전’일까 ‘모둠전’일까. ‘모듬’은 ‘모임’의 잘못이므로 제쳐놓자. ‘모둠’ 또한 ‘학생들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이라니 무시할거나. 간단치가 않다. 한글학회 사전이 특별나게 ‘모두다’를 ‘모으다’로 풀이한다. 다른 사전에도 두루 올라있는 ‘모두뜀’(두 발을 한데 모아 뛰는 뜀) ‘모둠발’(가지런히 모아 붙인 두 발)이 그 흔적이다.

그럼 모둠전 해도 될까? 이 말은 ‘볶음밥’과 구조가 같다. ‘볶은밥’ 또는 ‘밥볶음’이라 해야 자연스럽건만 우리 말버릇이 어디 꼭 그런가. 다행히 이 말고 조어법 거스른 것은 ‘비빔밥’ ‘비빔국수’ 정도. ‘묵무침’을 ‘무침묵’이라 않고 ‘두부조림’은 ‘조림두부’라 아니 한다. ‘찜달걀’ 아닌 ‘달걀찜’이라 하지 않는가.

해서 ‘모둠전’보다는 ‘전모둠’이, ‘전모둠’보다는 ‘전모음’이 타당하다. ‘모두다’가 표준어 아니라 하니. 아니면 ‘골고루, 여러 가지’라는 뜻을 담아 ‘갖은전’ 해도 될법하다. ‘갖은것’(가지가지의 것) ‘갖은양념’(갖가지 재료의 양념) 하듯이.

궁금한 게 있다. 혹시 ‘김치찌개’보다 유사품 ‘김치찌게’를 더 맛나게들 먹진 않았을까? 제대로 쓴 ‘아귀찜’이 과연 ‘아구찜’보다 많이 팔렸을까? /글지기 대표

[양해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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