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생애 그린 연극 日 개봉…원작 소설 이정명 작가 인터뷰
최근 일본 도쿄도(東京都)의 한 공연장에서는 윤동주(1917∼1945)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이 잇달아 울려 퍼졌다.
도쿄에서 상연된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 |
일본 창작극 단체인 '청년극장'이 9월 12∼20일 상연한 '별을 스치는 바람' 덕분이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그린 이정명(55) 작가의 동명 소설(은행나무 펴냄)을 각색한 연극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공연계가 얼어붙은 와중에도 2천200여명이 윤동주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해 여름 일본 불매운동 시기에 본격적으로 기획에 들어갔던 연극"이라며 "소설을 무대 위로 올리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일본 제작진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정명 작가 |
일본에서 윤동주의 시가 낭독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2012년 발표한 소설은 일찌감치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해외 문학상을 받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일본에서는 지난해 발간될 정도로 소극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연극으로 올리자는 제안이 온 것은 올해 초였다.
그는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뜻깊게 생각하면서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배우를 섭외하고 공연장을 계약했고, 8월에는 전체 대본이 나왔다.
이대로면 순조롭게 개봉하겠다 싶었는데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그는 "연극이 물거품이 될까 걱정도 했지만 이내 안심했다"며 "연출가가 윤동주 시인을 반드시 무대 위로 올려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 과거를 바라보는 한일의 시각차였습니다. 그러나 대본을 훑어보니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이 돼서 만족스러웠죠. '아! 이들도 윤동주에게 애착이 크고, 역사적인 시각도 올곧구나' 확신했죠."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시라이 게이타 씨는 연합뉴스에 "윤동주를 전부터 잘 알고 있어서 언젠가 연극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별을 스치는 바람' 제작을 의뢰받아 원작을 읽기도 전에 승낙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냉랭해진 한일 관계 상황에서 양국 독자 모두에게 윤동주가 사랑받는 이유로 '인간 본연의 착한 마음씨'를 꼽았다.
"1900년대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견뎌내면서도 시인 윤동주는 원초적인 선함과 진실함을 잃지 않고 노래했어요. 최근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을 견디는 현대인에게 전쟁통에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시인의 의지가 위로로 다가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윤동주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무엇이냐"는 우문에 그는 "순위를 매기는 일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시 한편 한편이 모두 명작이고 작품마다 독자가 처한 상황과 나이, 심지어 아침인지 저녁인지에 따라 의미와 감동이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는 현답을 내놨다.
일본 도시샤 대학교 교정의 윤동주 시비 |
윤동주의 첫 기억은 경북대 재학시절인 1980년대 말 일본 교토(京都)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시인의 모교인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초라할 정도로 작은 그의 시비를 목격했다.
충격을 받아 함께 여행을 떠난 일본인 친구이자 고인의 직속 후배인 이 대학 영문학과 학생에게 "윤동주를 아느냐"고 물었으나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잊힌 윤동주를 일본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이번 일로 그때의 숙원을 30여년 만에 푼 셈"이라고 웃었다.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는데 어디선가 꼭 연극 개봉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제가 소설 속에서 가장 아끼는 장면이 있어요.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윤동주가 별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일본인 간수가 알아차리는 부분이에요. 간수가 윤동주를 호송하는 척 바깥으로 끌고 나간 뒤 둘은 함께 별을 바라보게 되죠. 국적과 인종, 과거사를 접어 둔 채 영혼 간의 교류가 이뤄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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