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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성장주 사재기’ 경계해야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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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확실히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유튜브는 각종 투자 관련 콘텐츠로 넘쳐나고 있고,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지인들이 주식투자를 시작했다며 연락을 주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식투자는 자본주의의 주역인 기업의 성장에 동참해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증시의 종합적인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코스피는 1972년 이후 올해까지의 49개년 중 34개 해에 올랐다. 한국경제에 대한 여러 우려가 대두됐던 2000년대 들어서도 코스피가 2년 연속 떨어졌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론 주식투자에 대해 낙관론의 편에 서는 게 옳다고 본다.

한국증시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증시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은 경제성장을 반영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의 장기 성과는 그 나라의 명목성장률에 수렴하곤 한다. 그런데 경제는 웬만하면 뒷걸음질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경우는 단 두 번에 불과했다.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80년과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이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의 기록이고, 코로나19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올해가 세번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나 코로나급의 위기는 돼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셈이다. 극단적인 위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에는 경제가 성장하게 마련이라, 주가도 이를 반영해 장기적으로는 상승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식투자가 이렇게 승률이 높은 투자인데, 왜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주식투자를 외면해왔던 걸까. 그러나 한국인들이 늘 주식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과 비슷한 주식투자 열풍이 과거에도 있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의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과 코스닥 ‘닷컴주’ 투자 열풍이 있었고, 2005~2007년에는 주식형 펀드로 뭉칫돈이 흘러들어왔다. 투자 내용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닷컴투자 열풍을 다룬 1999년 하반기의 기사는 제목만 가리고 보면 언택트(비대면) 관련주 투자 열풍을 보도하는 요즘의 기사와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공모주 투자 열기 또한 과거 강세장에서 나타났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한국 투자자들의 문제는 주식투자 자체가 아니라 투자행태에 과도한 쏠림 현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주식투자는 길게 보면 승률이 높지만, 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포지션을 과도하게 잡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경제는 완만하게 꾸준히 성장하지만, 주가는 경제보다 훨씬 변동성이 크다. 주가가 경제 성장 속도를 과도하게 뛰어넘는 경우가 버블이고, 과도한 우려로 주가가 급락하면 역버블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경제보다 주가의 변동성이 큰 것은 주식투자의 주체인 인간이 ‘탐욕과 공포’에 휘둘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버블을 만든다. 또한 사자마자 올라야 한다는 과도한 욕심은 주가 조정 국면에서 나쁜 가격에 주식을 파는 행위로 귀결된다. 자산 증식을 위해 주식투자는 좋은 선택이지만, 과도하게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주식을 사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기술주들이 조정을 받았지만 이들 종목은 여전히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높다. 지난주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주관한 배터리데이 이후 테슬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테슬라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너무 높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근 몇 달 동안 테슬라 주가는 7배가 넘게 뛰었다. 투자자들은 이미 높은 기대를 주가에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터리데이 행사의 밋밋한 내용에 대한 실망감으로 주식을 팔았던 것이다. 테슬라가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가가 그 기대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성장주는 밸류에이션이 높더라도 성장에 대한 매혹적인 스토리가 투자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곤 한다. 좋은 기업은 좋은 주식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장주들은 늘 투자자들을 매혹시킨다. 성장주에 대한 열광은 이들 종목군에 대한 높은 밸류에이션 부여로 나타난다. 물론 요즘 미국 기술주를 비롯한 주요 성장주들의 주가가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있을 수 없고, 설사 버블이라고 하더라도 그 버블이 언제 터질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고, 또 주식투자가 모든 것을 알아야 이기는 게임도 아니다. 자신의 앎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포지션을 잡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분산투자를 강조하고, 분할매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른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투자의 세계가 확실성의 영역이라면 좋은 자산을, 좋은 가격에 한꺼번에 사면 되지 왜 분산하고, 분할하는가. 늘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특정 섹터에 대한 쏠림이 있다면 분산하는 노력이 필요한 국면이라고 본다. 아무리 높은 가격을 지불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한 자산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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