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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추 장관 아들 의혹, 한국사회 ‘원칙’ 돌아보는 계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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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김영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담당 조사관이 23일 서울 용산구 개인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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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납비리 내부고발자’

김영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담당 조사관을 소개할 때 따라붙는 말이다. 그는 해군 소령으로 복무하던 2011년 쫓기듯 군을 떠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계룡대 근무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며 9억원대 군납비리를 언론에 폭로한 후과였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군 내에서 문제제기한 사안이었다. 2011년 권익위 조사관으로 임명돼 2015년까지 일했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캠프의 공익제보지원위원회 기획팀장으로 일했다. 권력의 향배와 관계없이 공익제보 활동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가 지난 15일부터 ‘당직병사’ 현모씨의 조력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현씨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인 서모씨의 군복무 시절 휴가 특혜 의혹을 첫 제보한 인물로 지목돼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장 김 전 조사관과 현씨의 연결고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했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욕 먹고, 국회의원·장관에게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받는 게 안타까워서. 나도 제보자로서 고통 받은 경험이 있거든요.” 23일 서울 용산구 김 전 조사관의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현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내가 먼저 현씨에게 연락했다. 제보자로 찍혀 곤란해 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의 글이 특히 충격이었다(황 의원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씨를 겨냥해 ‘단독범’ 등 표현을 사용하고 배후가 있을 것이란 추정을 내놨다). 과거 방산비리를 내부고발한 뒤 나에 대한 유언비어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게 기억났다. 13일 현씨를 만나서 ‘사건 발생 및 진행 경위서’를 쓰게 했다. 사안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정리해보자는 취지였다. 또 공익제보자로서 권익위에 신분보장 요청서를 다음날 제출하도록 도왔다.”

-어제(22일) 권익위가 현씨를 만났다.

“신고가 들어온 데 따른 조치다. 법령·규정대로, 관련자 등과 만나 확인조사를 거치는 작업이다. 공익제보 경위, 제보 이후 상황, 피해사실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현씨는 구체적으로 무슨 피해를 입었나.

“SNS에서 온갖 비난을 받았다. ‘거짓말이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비난에 더해, ‘소송을 준비하라’는 일부 특정 세력 지지자의 편지글까지 목격했다(김 전 조사관은 현씨 부모님이 보낸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부모는 ‘아들한테는 차마 못 보내고 선생님께 보냅니다. 한 번 정독해주세요. 죄송합니다’라며 일부 누리꾼이 작성한 현씨 상대 협박성 글을 김 전 조사관에게 공유했다). 또, 향후 예상되는 불이익도 만만찮다. 얼굴이 알려졌으니 사회생활이 쉽지 않을 수 있고, 고소·고발이 이어진다면 일상 생활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권익위가 보호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사안이다.”

-공익제보가 아니라는 비판이 많다.

“메시지를 부인하려고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현씨를 두고 ‘일베’라면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제보한 것처럼 몰아간다. 하지만 그는 그냥 공부하는 학생일 뿐이다. 무슨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또 설령 누군가가 일베라 하더라도 제보를 할 수 있지 않느냐. 제보에 관해선 흑묘백묘로 봐야 한다. 제보한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제보 내용까지 나쁜 건 아니다. 의미 있는 제보는 누구에게서 나왔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

-현씨 제보에 공익성이 있나.

“이 사건이 갖는 결과적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의 병역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과거 사회 고위층의 병역회피 사건이 불거지면서 (병역 판정) 기준이 높아졌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내의 관행적 비리와 불공정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돌아보면, 서씨의 휴가 미복귀 무마 의혹이 시작된 것도 군율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위는 당직병사에게 ‘휴가자로 처리하라’고 말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근거를 제시해줬어야 한다. 만약 추 장관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나선 거라면 그 또한 문제다. 최근 같은 이유로 현씨를 나무라기도 했다. 당직날 저녁 보고 시간이 다 돼서야 출타장부를 확인할 게 아니라, 아침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그 때 출타장부에 서씨 서명이 없으면 보고를 했어야 맞고, 늦더라도 정식 보고 시간인 오후 9시까지 안 돌아왔다면 봐주지 말고 보고했어야 했다. 오후 10시까지는 오라고 해놓고 기다리다가 오후 9시30분쯤 대위가 당직실에 들어와서 지시하니까 그 말을 들은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때도 대위에게 근거를 내놓으라고 했어야 했다. 원칙이 살아있는 조직이란 그런 모습이다.”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제보의 의미가 있지 않나.

“당연하다. 하지만 제보라는 게, 사건의 전모를 모두 파악한 상태에서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전모를 밝히는 건 수사기관 등의 몫이다. 제보자는 자신이 알고있는 법, 절차, 관행 등을 고려했을 때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리는 거다. 제보의 신뢰성은 ‘제보자가 가져온 일부 증거를 검토했을 때 합리적인 의문 제기인가’ 선에서 논의된다. 현씨와 만나 내가 정리한 건 현씨가 경험한 당시 상황이다. 군대에선 모든 게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서류로 이뤄져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만약 서씨가 21일 휴가 서류를 신청했고, 23일 지역대장의 결재를 받아서 관인이 찍힌 휴가 명령서가 발부되는 식의 정상적 절차를 밟았다면 출타장부 등 어딘가에 기록이 남았을 거다. 그러면 현씨가 ‘이 친구 휴가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출타장부엔 서씨가 돌아왔다는 기록도, 서씨 휴가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없었다. 현씨가 알고 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난 거다.”

-향후 계획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현씨 주장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검찰 등) 발표가 나온다면, 현씨를 비난한 정치권이 사과나 유감을 표명하길 바란다. 명예훼손 등 고소·고발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이것은 양심의 문제다. 근거 없이 비난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어른의 자세다. 현씨가 공익제보 경험 때문에 부당한 비난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보 이후 겪은 일 때문에 트라우마를 앓고 거기 갇혀 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제보자도 자기 일상을 살고, 미래를 가꿔나갈 수 있어야 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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