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22일 한 시민이 '봉기해서 투표하자'고 쓰인 마스크를 쓰고, 숨진 연방 대법관 긴즈버그의 후임을 차기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는 시위를 하고 있다. 후임 대법관 인준을 맡은 미 상원의 다수당인 미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그가 지명하는 대법관 후임자에 대한 인준 절차를 신속히 밟기로 했다.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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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석인 연방 상원에서 공화당 의석은 53석이지만, 그동안 롬니를 비롯한 3명의 공화당 의원은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후임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롬니의 입장 선회로, 미 공화당은 11월3일 미 대선·총선 전에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또 추가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대법관의 장례가 끝나는 26일까지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미 공화당에는 “신(神)은 감세(減稅)와 외적(外敵)의 격퇴, 보수적 판사 인준이라는 세 가지 일을 하라고 공화당을 만들었다”는 농담이 있다. 그러나 이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준 투표를 대선 전(前)과 후, 언제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여전히 불분명하다. 인준 투표의 시기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복잡하게 따지는 정치적 셈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선 전 인준 투표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대법원의 보수 성향을 “앞으로 50년(트럼프 표현)” 보장한다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 상원 법사위는 대법관 후보의 인준 청문회와 투표를 한 달 내 완료할 수 있게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후임 대법관 발표(26일)와 대선(11월3일)까지는 38일밖에 없다. 미 연방 대법관이 이렇게 초(超)스피드로 인준된 전례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브랫 캐버너 대법관은 인준까지 89일, 닐 고서치 대법관도 65일이 걸렸다.
상원 소수당인 민주당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이런 대법관 인준 강행은 대선에서 ‘역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한다. 흥분한 민주당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과 상원을 모두 민주당으로 갈아치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긴즈버그 사망 이후 첫 사흘 동안 인터넷 선거 기부금 창구를 통해 1억6000만 달러가 추가로 모였다.
◇대선 후 인준 투표
일단 인준 청문회는 시작하되, 인준 투표 자체는 선거 이후에 하는 것이다. 투표를 선거 이후로 미루면, 반대로 많은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이 공화당의 상원 재(再)확보와 트럼프 재선을 확고히 하려고 투표에 참여하리라는 것이다. 이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와 공화당이 활용한 방법이다. 많은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은 트럼프의 인성(人性)에는 거부감을 가졌지만, 트럼프가 당선 시 임명하겠다고 밝힌 보수적인 연방판사들의 목록을 보고 공화당과 트럼프를 찍었다. 하지만 위험 요소는 있다. 만약 선거에서 트럼프가 지고 공화당도 상원을 잃으면, 선거에 패배한 대통령과 당(黨)이 인준을 강행하는 꼴이 된다. 다음 회기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할 공화당 의원들이 ‘무리수’를 둬가며 트럼프 지명자를 계속 지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흥미롭게도, 백악관은 ‘인준 투표’ 시점에 대해선 함구한다. 대선 전 투표를 고집했다가는, 미 유권자들에게 대선 패배를 미리 자인(自認)하면서까지 보수적 판사를 밀어붙이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상원대표 매코널의 선택은?
상원의 의사일정을 결정하는 미치 매코널(캔자스) 공화당 대표는 “트럼프의 지명자를 놓고 상원 본회의장에서 투표할 것”이라고 만 했을 뿐, 지금까지 투표 일정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실용적”(9월19일 자 뉴요커 표현)이다.
후임 대법관의 인준 투표 일자를 결정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대표가 22일 당 전략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나서고 있다.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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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산법(算法)은 다르다. ‘트럼프 재선’과 ‘상원을 장악한 미 공화당의 최고 실권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후자(後者)다. 그는 2016년 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사망한 진보적 연방 대법관 안토닌 스칼라의 후임을 지명하려 했을 때에도,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라”며 거부했다. 그는 트럼프가 그 해 대선에서 지더라도,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해 민주당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을 막을 수 있게 보수적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리라고 베팅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자를 발표하면, 인준 투표의 스케줄을 정하겠다”고만 말했지만, 곧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대선과 연방 상원 선거에서 이기면, 공화당의 대법관 인준 강행에도 수(數)는 있다. 민주당에선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정한 연방 대법관의 정원(9명)을 개정해, 3~4명 대법관 수를 늘려 대법원 성향을 균형 또는 진보로 되돌리자는 말이 나온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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