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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헌금 줄어든 교회, 부목사·전도사 대량 해고…"노동자도 아닌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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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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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입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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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대형교회 기도원에서 일하던 전도사 A씨는 최근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4번 예배를 준비하고, 그 사이 기도원을 찾은 신도를 상담하며 A씨가 받은 급여는 80만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며 A씨를 추켜세우던 기도원은 근태를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A씨는 기도원에 대한 배신감과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엄태근 기독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22일 뉴스1에 "최근 코로나19(COVID-19) 사태 이후 교회에서 일하던 부목사, 전도사 등 부교역자들이 갑작스럽게 해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예배 수가 줄고 교회 수익도 적어지면서 교회가 부교역자를 해고해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엄 위원장은 "부교역자 해고 절차는 너무 간단하다"며 "당회실에 부르거나 전화로 '다른 사역지를 알아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A씨 사례처럼 부교역자들이 갑자기 해고를 당해도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 위원장 자신도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와 3년 구두계약을 했으나 1년 만에 해고됐다. 엄 위원장은 부목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3심까지 모두 패소했다. 법원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점,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엄 위원장은 법원의 이같은 판단이 교역자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내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부분 교단에서는 교회 내 교역자들을 '봉사자', '사명자'라고 부르며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5년 전국 개신교 부교역자 9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한 경우는 6.3%에 불과했다. 이들은 1일 평균 10.8시간을 일하지만 월차나 특근,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도 지급받지 못했으며 4대보험 가입률도 3.2%에 그쳤다.

엄 위원장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은 일정한 급여를 받고 종속된 관계에서 근로를 했으면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세계 10위권의 대형교회가 한국에 다 있다고 자랑하지만 이 가운데 노동권을 찾지 못하고 희생당한 교회 내 직원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교회 교역자들이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상황 개선을 위해 최근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다만 엄 위원장이 부목사로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조는 교역자 아닌 다른 직업으로 설립 필증을 받는 등 우회적으로 설립됐다.

기독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부목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법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출범을 알렸다. 이들은 교회 내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직 활동을 하는 한편, 교회 세습 반대 운동 등 부조리를 지적하는 활동도 병행할 방침이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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